[사설]남북협력의 새 모델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08분


올 봄엔 북한의 농지에 남한산 씨감자가 파종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식이다. 경기 화성의 ‘두레마을 농업공동체’가 북한의 나진 선봉 행정경제위원회와 3백15만평에 이르는 농지의 장기임대 계약을 했다. ‘북한 중국 두레마을 추진본부’는 북한판 두레마을 조성과 장(醬)공장 설립을 위해 이같이 계약했다고 밝혔다.

북한 두레마을은 감자 콩 옥수수 같은 곡물생산뿐만 아니라 양돈과 돼지가공식품 생산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한국의 농업전문인력 5∼20명이 함께 살면서 남북공동 농업생산 활동을 편다. 한국의 농업기술자들은 또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을 위해 조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들려온 민간 남북교류협력 소식이다.

농축산 분야의 남북교류협력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무엇보다 긴요한 일일 것이다. 남한으로서도 북한동포의 식량궁핍 해소를 돕는 근본적인 방안이 될 영농기술 이전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북한에 매년 식량 부족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국제 인도주의단체들이 벌여온 대북식량지원은 북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의 영양실조를 방지하는 데 집중돼 왔다. 이에 비해 북한 농업구조가 지닌 문제점의 근원적인 해결방안 모색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대북 농업협력은 의미가 크다.

북한의 식량난은 이른바 주체농법(主體農法)과 비료부족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산지가 많은 북한의 지형에 맞는 주체농법 중 하나로 계단식 농지가 널리 개발됐다. ‘수령’의 교시에 따라 대대적인 계단농지 조성사업이 강행된 것이다. 그러나 광역에 걸친 계단농지 건설은 강우량을 흡수하는 산림의 훼손을 가져왔다. 그것이 홍수피해의 원인인 줄 알면서도 수령의 교시이기에 고치지 못하는 북한체제의 경직성이 문제였다.

북한의 비료부족은 비료공장에 배분해야 할 에너지를 군수공장이나 군사훈련용으로 돌렸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비료공장이 에너지난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데도 미사일 제조공장은 계획대로 가동된다는 이야기다.

두레마을의 민간 농업협력과는 별도로 정부차원의 대북 농업지원계획도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새 정부의 1백대 과제에도 정경분리 원칙 아래 남북경협과 비정치분야의 교류협력 활성화가 들어 있다. 두레마을의 남북 농업협력이 그동안 막혔던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 물꼬를 트는 새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두레마을의 대북 농업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남북교류협력 사업자 승인은 물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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