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50)

  • 입력 1998년 2월 25일 08시 07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18〉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에도 저는 사촌 오빠의 팔을 베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만, 잠결에 들으니 사촌 오빠가 혼자 일어나 앉아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를 향한 내 가슴은 불처럼 뜨겁건만, 너는 언제나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구나. 오,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대 가슴의 얼음이 녹고 우리의 봄이 오기를? 그러나 웬일인지 우리의 봄은 오지를 않고, 길고 긴 겨울날 나 홀로 울고 있네. 이 노래를 들은 저는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오빠, 왜 그래? 오빠를 그렇게 시름에 잠기게 하는 게 뭔지 말해줄 수 없겠어?” 그러자 사촌 오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사촌 누이 동생이여! 지난 오 년, 나는 너를 애타게 사랑해 왔건만,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너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나를 시름에 잠기게 한단다.” 이 말을 들은 저는 몹시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언제 오빠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래? 내가 카이로에 온 후로 오빠가 나한테 얼마나 친절하게 해주었다고. 알라께 맹세코, 나는 오빠를 사랑해. 그리고 존경해.” “그렇지만 네가 말하는 사랑이란 것은 내가 말하는 사랑과 달라. 나는 너를 애인으로서, 장차 부부가 될 사람으로서 사랑한단 말이야. 그러나 너는 나를 다만 사촌 오빠로서 사랑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너는 흡사 마음 속 깊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만 같단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저는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라 말했습니다. “아이, 오빠도! 오빠와 나는 사촌 남매간이야.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애인처럼, 부부처럼 사랑할 수가 있단 말이야?” 제가 이렇게 말하자 사촌 오빠는 잠시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얘야, 우리 이슬람교도들의 신성한 율법에는 사촌 남매간의 결혼을 금하는 법은 없단다. 나의 부모님만 하더라도 서로 사촌 남매간이 아니냐. 그리고 너의 부모님도 서로 사촌 남매간이고. 그런데 우리가 결혼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냐?” 사촌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저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잠시 후에서야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오빠가 언제까지나 나의 사랑하는 사촌 오빠로 남아줬으면 좋겠어. 아무런 사심이 없는 이런 순수한 사이 말이야. 그러니 오빠, 이제부터는 제발 쓸데없는 생각으로 오빠를 괴롭히지 말아줘.” “오, 그렇지만, 얘야,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란다. 너의 고운 입술에 입맞추고, 너와 몸을 합하고 싶은 욕망으로 나는 밤마다 미칠 것만 같단다.” 사촌 오빠는 이렇게 말하며 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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