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학준/인도의 경제-외교노선 고뇌

  • 입력 1998년 2월 21일 20시 10분


지난 16일 시작돼 3월7일에 끝날 인도의 12대 국회의원 총선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난해 8월15일의 독립 50주년과 지난 1월30일의 간디 암살 50주년 직후에 실시되는 첫번째 총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도에서는 인도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벌어졌고 마침 필자는 최근 인도를 방문하며 그 토론을 접할 수 있었다. ▼ 간디-네루업적 조명 활발 ▼ 이 토론의 중심에는 인도 현대사의 양대 거인인 간디와 네루가 자리잡고 있다. 우선 인도의 국부(국부) 간디에 대해 그들은 그의 ‘국가통합우선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인도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분열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으라고 했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간디는 많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제시했다. 국민이 좀더 많은 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중앙집권화에서 벗어나 지방분권화로 가야 한다는 것, 정부의 권한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인민의 주도권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 집권당인 국민회의를 정치인들의 정권장악 수단으로 만들기보다는 사회에 봉사하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인간의 기본적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수단을 지나치게 기술에서 찾으려고 하는 단순한 기술우월주의는 인간을 기술에 종속시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 다양한 생활양식과 정신문화를 똑같이 존중해야지 함부로 그것들을 획일화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근검과 절약의 윤리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 등 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들이 인도의 초대 총리로 17년을 통치한 네루의 ‘발전우선주의’아래 포기됐다고 그들은 보았다. 실제로 네루는 국가주도의 중공업중심적 개발정책을 선포했다. 그 결과 우선 중앙집권화 경향이 두드러지게 자리잡았다. 주로 외국원조와 외국기술에 의존한 댐과 발전소가 여기저기에 세워졌고 그것들은 ‘현대 인도의 새로운 신전(神殿)’으로 떠받들어졌다. 네루주의자들은 이것을 인도 근대화의 출발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그것이 인도에 많은 문제들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빈부의 격차와 도농(都農)의 격차 등이 더욱 벌어지고 물신(物神)숭배가 팽배해졌으며 소비주의가 만연한 것 등이 그 보기들이라는 것이다. 또 이미 네루시대에 외국의 경제력이 진출해 들어오더니 그의 후손들, 예컨대 딸 인디라 간디 총리 시대와 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 총리 시절에는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 논쟁은 이번 총선에서도 재연됐다. 네루주의를 계승했다는 국민회의는 경제정책으로 ‘더 많은 경제성장’과 ‘더 많은 개방’을 제시했다. 이 대목에서 비판자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예로 들어 국민회의의 정책을 공격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방 자본주의가 자신의 ‘제국주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내세운 세계화의 깃발을 따라가 개방체제로 전환하다가 결국 그들의 농간을 막아내지 못하고 경제위기에 휩싸이게 됐다는 것이다. ▼ 개방경제론 싸고 논란 ▼ 네루의 비동맹 외교노선에 대해서도 비판이 없지 않았다. 인도가 그렇게 공을 들였던 비동맹운동이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이후 의미를 잃었음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비동맹 외교노선이 인도의 위신을 높인 것이었다는 긍정론이 우세했다. 우리도 오는 8월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도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토론을 통해 보다 더 슬기로운 길을 찾아야겠는데, 인도의 고뇌가 적지 않은 시사를 준다고 생각했다. 김학준 (인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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