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하태원/서랍에 감춰둔 「개혁」

  • 입력 1998년 2월 11일 19시 51분


“4억원의 연구비를 들여 만든 시정개혁 보고서가 기밀이란 말인가.” 10일 오전 서울시의회 본관 본회의장. 이달원(李達源·노원6)서울시 시의원이 ‘대외취급주의’라는 노란색 도장이 찍힌 서류를 치켜들며 따졌다. 시정개혁연구단 이름으로 발간된 ‘서울시 경영진단과 개혁방안 도출을 위한 연구’라는 보고서였다. 95년 민선시장체제 출범을 앞두고 시정개발연구원 등 6개 연구소가 서울시의 인력진단과 조직개편에 대해 과제별로 실시한 연구결과물. 내용은 ‘비대해진 조직을 감량하고 필요한 적정인원으로 최적의 효율화를 시도하는 등 지방자치단체도 경영마인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줄거리. 서울시는 이것을 대외비로 분류, 2년6개월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비밀에 부쳐온 셈이다. 보고서가 공개되고 언론이 이를 비중있게 취급하자 시 간부들은 오히려 시의회에 유감을 표시하며 못마땅해 하는 모습이다. 한 고위간부는 “내부 조직에 관한 연구진단 결과를 외부에 공개해서 문제를 삼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또다른 간부는 “시행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탁상공론식으로 만들어낸 연구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 연구는 연구일 따름이지 이를 집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공무원의 판단”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는 95년 5만3천4백43명이던 공무원수를 오히려 1천4백1명 늘려 98년 1월 10일 현재 5만4천8백44명이 됐다. 시민의 혈세를 들여 만든 보고서는 서랍속에 깊이 감춰둔 채 ‘나몰라라’식으로, 공무원을 늘려왔다. 직원 숫자란 줄이기는 고통이요, 늘리기는 쾌락…. 시민들이 나서지 않는 한 서울시는 결코 스스로 개혁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조직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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