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29)

  • 입력 1998년 2월 3일 07시 22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97〉 항해가 길어지면서 왕자님과 저 사이의 정은 깊어만 갔습니다. 오누이처럼 다정한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아 선장을 비롯한 모든 선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두 언니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이에 정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언니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언니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결혼도 하지 않은 외간 남자와 그렇게 가까이 지내도 되는 거니? 너는 대체 이분을 어떻게 할 작정이니?”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바그다드에 돌아가면 식을 올려 정식으로 이분을 남편으로 맞이하겠어요.” 이렇게 말한 저는 왕자님 쪽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여보, 낭군님, 당신도 제 계획에 반대하지 않으시겠죠? 바그다드에 도착하면 신성한 식을 올리고 저는 당신의 아내가 되어 이 몸과 마음을 바치겠어요.” 그러자 왕자님은 다정스레 제 손을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미 나의 애인이며 아내랍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식을 올리고 결혼을 하고 말고요.” 이 말을 들은 두 언니는 도저히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음 속으로 음흉한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밤 두 언니는, 왕자님과 제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곤히 잠들어 있는 침실로 몰래 숨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 침상을 들어내어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중에 차가운 바다에 던져진 왕자님과 저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러나 뱃사람들도 모두 잠든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았습니다. 미친듯이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우리를 버려둔 채 배는 멀어져갔습니다.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서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던 저의 손에는, 그것도 알라의 뜻이었겠지만, 커다란 목재 하나가 잡혔습니다. 저는 그것을 붙들고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왕자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왕자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헤엄을 칠 줄 몰랐던 왕자님은 끝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알라께선 그분을 숭고한 순교자의 무리에 넣어주셨던 것입니다. 왕자님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두운 바다에다 대고 마구 소리를 질러 왕자님을 불러대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님의 대답 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았고, 저는 나무토막에 엎드린 채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어느 섬의 모래톱에 쓰러져 있었고, 뜨거운 태양볕은 그러한 저의 몸뚱어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저를 실은 목재는 조수를 타고 표류하다가 마침내 이 낯선 섬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님을 잃은 저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더 이상 왕자님이 제 곁에 없다는 것을 안 저는 밀려드는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뜨거운 모래 위에 얼굴을 묻은 채 울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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