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미선/엄마 애정 담긴 「딸아이 단발머리」

  • 입력 1998년 1월 31일 20시 16분


세살 난 딸아이의 머리를 다듬는 게 고민거리였다. 제법 예쁘게 길러서 묶어주었는데 요즘 들어선 도무지 머리빗기를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하루에도 몇차례씩 머리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지곤 했다. 딸아이 또래인 아래층 아이는 미장원에서 6천원을 주고 단발머리로 예쁘장하게 잘랐다. 하지만 솔직히 남편의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요즘 같아선 6천원도 거금처럼 느껴지니 어떡하랴. 문제는 미장원에 데리고 가느냐, 아니면 내가 자르느냐였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지만 지난번에 잘못 손을 댔다가 남편에게 백번도 넘게 들은 잔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니 걱정이었다. “다시는 머리에 손대지 마. 미장원에서 자르란 말야.” 아이 머리에 선뜻 손대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어린 시절 울면서 머리를 다듬던 기억 때문이다. 머리를 예쁘게 기르고 싶었지만 6남매나 두셨던 어머니는 늘 머리를 짧게 잘라 놓으셨다. 그러니 내 어린 시절의 사진은선머슴같 은단발머리 일색이다.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하다 결단을 내렸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고는 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나갔다. 자꾸만 움직이는 아이에게 엄포를 놓아가며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단발머리라 우습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쪽을 맞추면 저쪽이 비뚤고 삐쭉삐쭉 튀어나오고…. 그런대로 잘라 놓고도 남편에게 또 야단맞을까 싶어 하루 종일 아이 머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퇴근한 남편에게서 나온 첫마디. “아니 이게 뭐야. 예쁜 우리 딸은 어디 가고 촌스러운 당신 얼굴만 남았잖아.” 어린 시절 사진 속의 내 얼굴과 지금의 딸아이 얼굴이 흡사하다는 얘기였다. 김미선(서울 양천구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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