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이것이 헝그리농구』…나산 4연승 질주

  • 입력 1998년 1월 19일 20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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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파동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요즘 프로농구 나산플라망스의 경기는 차라리 ‘전투’다. 코트에 나선 황유하 감독과 선수들의 눈에는 독기가 번득인다. 흐르는 볼을 잡기 위해 몸을 던지는 악착스러움, 리바운드볼을 향해 앞다퉈 솟구치는 집착력. 상대팀 선수들이 기가 질릴 정도다. 현대다이냇전 이후 4연승. 예상을 깨고 철옹성 현대를 격파한데 이어 올시즌 상대전적에서 3연패로 절대열세였던 대우제우스마저 적지에서 무릎꿇렸다. 모기업인 나산그룹의 부도. 이 불행이 오히려 선수단을 똘똘 뭉치게 한 것일까. 부도소식을 들은 15일. 선수단이 광주 숙소에 모였다. “너희들은 프로다. 어떤 상황에서도 코트에 나가 싸워야 한다. 또 이기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황감독의 말은 짧지만 단호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하던 선수들도 정신을 차렸다. 33세의 최고참 이민형. 주장인 그는 내년시즌부터 선수겸 트레이너로 자리를 옮기게 돼 올시즌이 전업선수로는 마지막 무대. “회사가 어렵지만 그럴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서로 돕고 뭉쳐야 살 수 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노장의 결연한 의지는 후배들에게 그대로 이입됐다. 기업은행팀이 해체돼 갈 곳이 없을 때 둥지를 마련해준 것이 바로 나산.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도 받아줄 곳도 없다. 절박하던 심정은 끝까지 해보자는 투지로 바뀌었다. 김상식의 외곽포가 위력을 더해가고 김현국의 수비는 더욱 찰거머리가 됐다. 용병들의 분발도 놀랍다. 시즌 단위로 계약하는, 그래서 ‘남’일 수 있는 이들은 그러나 결코 남이 아니었다. 윌급때문에 조바심을 낼 만도 하건만 힘들다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변변한 스타플레이어 한명 없는 나산의 농구는 조직력과 수비의 농구. 여기에 불같은 투혼이 더해지면서 다 진 게임마저 뒤집을 정도로 거침이 없다. 나산그룹 계열사의 임직원들은 19일부터 농구단 돕기 모금운동에 나섰다. 이기홍 단장은 선수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농구단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룹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전하며 선수들을 다독거렸다. 기아엔터프라이즈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입장이지만 그래도 기아는 스타군단. ‘헝그리 농구의 매운 맛을 보여주자.’ 대한 추위보다 더욱 매서운 IMF 한파 앞에서 손을 모은 나산농구팀.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자. 〈이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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