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0)

  • 입력 1998년 1월 12일 08시 45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78〉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나는 마흔 명의 처녀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고 산책하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장난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처녀 한 명씩을 번갈아 품고 자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 쾌락을 맛보았습니다. 마흔 명의 처녀들이 주는 쾌감은 각각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 즐거운 정사가 끝난 뒤 숨을 할딱거리며 하는 그녀들의 질문은 언제나 같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그녀를 몇 번째(가령, 열다섯번째 서른번째 혹은 마흔번째)로 택했느냐고 묻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이런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한결같았으니, “그건 당신이 제일 예쁘기 때문이라오”하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녀들은 “어머!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럴싸한 설명을 곁들여 그녀가 제일 예쁘기 때문에 내가 몇 번째로 그녀를 택한 것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면 처녀들은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으면서도 몹시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나와 동침을 한 처녀는 이튿날 보면 활짝 핀 꽃처럼 더욱 아름답게 빛났고, 그런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내심으로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사실, 마흔 명의 처녀들은 누가 더 예쁘다고 할 수도 없을 만큼 다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따라서 내가 그녀들에게 하는 거짓말은 언제나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처녀들과 나는 날이 갈수록 정이 깊어졌습니다. 나는 그녀들의 각기 다른 향기와 촉감, 각기 다른 몸짓과 신음소리, 그녀들의 육체가 주는 쾌락의 각기 다른 색깔까지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그녀들 하나하나와 더없이 가까워졌고, 그녀들 하나하나를 깊고도 구체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들 또한 나를 더없이 사랑하였으니, 지극정성으로 나를 섬겼습니다. 그녀들은 오직 나를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은둔의 궁전에는 즐거운 웃음소리와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과 마르지 않는 쾌락뿐이었습니다. 꿈같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가 되자 처녀들은 나에게로 몰려와 울며불며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녀들에게 물었습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거요? 나까지도 공연히 슬퍼지는구려!” 그러자 처녀들은 더욱 구슬피 울며 말했습니다. “오,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았을 것을!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가슴 아픈 이별은 없었을 것을! 당신은 저희들에게 사랑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저희들은 비로소 여자의 행복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런 당신과 이제 영원히 헤어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 당신은 저희들에게 이별의 고통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러한 그녀들을 다독거리며 나는 말했습니다. “자, 자, 그렇게 울지 말고 좀더 똑똑히 말해봐요. 내 쓸개주머니가 터질 만큼 그렇게 슬피 우는 까닭이 무엇인지 제발 좀 찬찬히 말해봐요. 우리가 헤어지다니, 그건 대체 무슨 말이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