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연세대 서장훈 『함성없어 더 추운 겨울』

  • 입력 1997년 12월 30일 19시 53분


『함성이 그립다』 서장훈(연세대4년)은 텅빈 97∼98농구대잔치 경기장으로 들어설 때마다 이렇게 되뇐다. 체육관이 온통 떠나갈 듯했던 환호. 한 발짝을 떼기 어려웠던 팬들의 성화. 겨울은 늘 그렇게 시작됐다. 그래서 함성과 함께 해가 저물었고 팬레터에 묻혀 새해를 맞았다. 그때는 그게 으레 자신의 몫인 줄 알았다. 때로는 성가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절감한다. 결코 당연한 몫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 줄을. 서장훈은 올해 처음 좌절을 배웠다. 휘문중 1년 때 농구를 시작한 이래 그는 항상 정상에 있었다. 지금은 해체된 진로농구단의 지명에 반발, 미국으로 「유랑」을 떠났던 95년에도 그는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뜻하지 않은 병마, 얽히고 설킨 프로팀 입단문제, 주위의 따가운 눈길…. 시칠리아 유니버시아드를 끝내고 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차 리야드에 도착한 8월, 그는 돌연 어지러움을 느꼈다. 앉아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서기만 하면 주위가 빙빙 돌았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28년만에 아시아 정상을 되찾았다. 그러나 우승의 기쁨은 벤치에만 앉아있었던 서장훈의 몫은 아니었다. 더욱 그를 괴롭힌 것은 「꾀병」이라는 주위의 손가락질. 병원에서는 『피로가 쌓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9월 맞수 고려대를 꺾었던 정기전 때도 그는 아웃사이더. 다행히 병은 차차 나았다. 그러나 이번엔 1백5㎏이던 체중이 5㎏이나 불었다. 졸업 후의 진로 문제도 그를 괴롭혔다. SK가 진로농구단을 인수할 때까지만 해도 금세 결말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SK나이츠에 입단한다는 원칙은 섰지만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털어놓고 상의할 동료도 없다. 미국유랑으로 1년을 묵는 바람에 팀에는 모두 후배뿐. 새해를 이틀 앞둔 30일 서장훈은 모처럼 교내 청송대를 걸었다. 마침 대학입시원서 접수일이라 캠퍼스는 시끌벅적했지만 뒤편의 청송대는 스산할 정도로 인적이 없었다. 잎을 모두 잃은 앙상한 나무들.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서장훈은 문득 자신이 겨울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지금은 헐벗었지만 봄이 오면 저 나무에도 다시 푸른 잎이 돋을 거야. 나도 그래. 이제 졸업을 하고 프로팀에 입단하면 다시 「나의 시간」이 온다. 그때면 잃어버린 함성도 다시 돌아오겠지』 내년은 범띠해. 범띠인 서장훈은 새해 25세가 된다. 2m7로 국내 최장신센터인 서장훈. 내년 프로농구 코트는 바로 그를 위한 무대다. 「아듀, 정축년」. 겨울이 깊어가는 지금 서장훈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최화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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