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장소희/『요즘 술값 누가 내나요』

  • 입력 1997년 12월 24일 08시 07분


『오늘 술값은 누가 냈어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은근슬쩍 물어봤다. 늘 받는 질문인데 요즘은 남편의 대답이 바뀌었다. 『추렴해서 냈어. 요새는 한사람이 내는 법이 없어』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모두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진 모양이다. 술값을 통째로 다 내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이제는 없어졌다는 얘기다. 남편에게는 약간의 허세가 있다. 술자리가 파할 때면 으레 『술값은 내가』 하면서 앞장서 쫓아나가 주머니를 털곤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하던 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부터는 술값 내기를 꺼리고 공짜술 먹을 데만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술꾼들도 추렴해서 술값을 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나 보다. 아내인 내게는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인다. 서로 술값을 먼저 내려고 하던 때야 술값 안낸 사람은 당연히 체면이 안선다는 생각과 함께 부담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행을 2차로 끌고 가고 이같은 부담은 3차 4차로 이어졌던 셈이다. 술자리가 길어지는 만큼 건강과 시간을 버리고 가정경제와 부부애정에도 주름이 지게 했다. 이제는 각자 추렴해서 내게 되니 서로 부담을 덜어 좋다. 2차 3차로 술자리가 길어지지 않으니 가정으로 일찍 돌아와 좋다. 건강과 가정경제에도 나아가 부부금슬에도 도움이 되니 말이다. IMF한파가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어려운 시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처럼 절약하는 생활태도를 고결하게 여기는 세태가 움트는 현상을 보면 우리 사회에 한번은 필요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부디 술값을 추렴해 내는 문화가 이 기회에 단단히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소희(서울 마포구 신수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