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삼척동굴]동양최대 석회암동굴군…지난달부터 공개

  • 입력 1997년 12월 4일 07시 44분


태초에 고요가 이런 것이었을까. 물 흐르는 소리말고 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랜턴 불빛이 어둠을 훑을 때마다 여인네의 숨겨진 속살처럼 수줍게 드러나는 신이 빚은 듯한 조각품들. 동양최대 석회암 동굴인 환선굴이 지난달 15일 억만겁 침묵을 깨고 드디어 일반에 공개됐다. 으레 동굴하면 「땅속」을 연상하는 인간들의 좁은 상상력을 질타하듯 이 굴은 우선 삼척 덕항산 해발 7백30m 지점 중턱에 있는 것부터 범상치 않다. 환선굴이 있는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일대는 관음굴 영터목세굴 덕밭세굴 제암풍혈 큰재세굴 등 6개 석회암 동굴군이 산재해 있는 동양최대 지역이다. 62년 7월 경북산악회원들이 등반 중 발견해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됐다. 길이 6.2㎞, 높이 30m, 폭 100m에 달하는 환선굴은 웅장한 규모에 아기자기한 내부가 마치 땅속에 묻힌 금강산이요 백두산이다. 현재 전 구간중 1.6㎞가 공개됐다. 바닥엔 물이 흐르며 벽면 천장까지 종유석으로 가득하다. 거대한 벽면을 뒤덮은 종유석들이 얼어붙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가 싶으면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 산호 영지버섯 만리장성에 달걀 프라이 모양까지 천태만상 만물상이다. 10여개 크고 작은 호수와 6개의 폭포가 있는 환선굴에는 동굴의 생성 성장 퇴화과정이 모두 들어 있어 동굴의 윤회도 알 수 있다. 연평균 기온 섭씨 11도. 천장과 벽면에서 스며나오는 물방울 양으로 사계절을 구분한다. 아직 미공개된 환선굴 내부에는 관박쥐 붉은박쥐 꼬리치레도롱뇽 알락곱등이 노래기 장님새우 옆새우 토토기 등 24종의 동굴생물들이 살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발길은 혹한의 빙설지역에서부터 열사의 사막 열대 정글에 이르기까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동굴은 인적미답의 탐험대상. 그 언제인지 모를 미지의 시간 속에 만들어진 동굴 안에는 짧게 살다가는 인간들이 넘볼 수 없는 이승 저쪽의 세계가 있다. 환선굴 그 곳에서 태초의 세상을 만나보자. 〈삼척〓허문명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