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73)

  • 입력 1997년 12월 4일 07시 44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41〉 내가 벽면을 걷어차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컴컴해지고 스산해지는가 싶더니 무서운 번개와 함께 요란한 천둥소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대지가 진동하더니 그만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술기운이 확 가시는 것을 느끼며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웬일이요?』 그러자 여자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신이 온 거예요! 그러기에 제가 뭐라고 했나요? 우리는 이제 파멸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도망가도록 하세요. 들어오신 길로 해서 말이에요. 빨리요, 빨리!』 그제서야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계단을 뛰어올라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급했던 나머지 신과 도끼도 그냥 두고 말입니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갔을 때에서야 나는 두고 온 신발과 도끼가 생각나 다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때였습니다. 땅이 두쪽으로 갈라지면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마신이 나타나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무슨 일이 있어서 날 부른 거야?』 그러자 여자는 파랗게 질린 낯으로 말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가슴이 답답하고 슬퍼서 술을 좀 마셨어요. 술을 마시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그만 벽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러나 마신은 말했습니다. 『이 갈보같은 년, 누구한테 함부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고난 마신은 방 안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기어이 내 신발과 도끼를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이게 뭐냐? 이래도 거짓말을 할 작정이냐?』 그러나 여자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습니다. 『어머! 그게 뭐죠? 나는 여태껏 그런 물건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 묻혀가지고 왔을 거예요』 그러나 마신은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며 소리쳤습니다. 『앙큼한 수작 작작해! 이 못된 갈보년아! 화냥년아!』 이렇게 소리치며 마신은 여자를 발가벗기더니 방바닥에 자빠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매단 것처럼 손과 발을 나무에다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연약한 몸뚱어리에 온갖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나는 여자가 내지르는 비명소리와 신음소리를 차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계단을 다 올라간 뒤에는 덮개를 닫고 흙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재봉사의 집으로 줄달음쳤습니다. 재봉사의 집을 향하여 달려가면서도 내 눈앞에는 모진 고문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그리고 내 귀에는 그녀가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쟁쟁거렸습니다. 칠년 동안이란 세월을 외롭게 살아온 그 착하고 조용한 여인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주다니, 나를 맞이하여 더없이 따뜻하게 대접해주었을 뿐 아니라 평생에 잊지못할 하룻밤의 쾌락을 선사했던 그녀를 배반하다니, 나는 내가 한 짓이 후회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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