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근로기준법의 폐지를 주장한 것은 놀랍다. 우리 재벌의 의식수준이 의심스럽고 시대감각이 한심하다. 근로기준법을 자율근로계약법으로 대체하자는 전경련 주장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경쟁력강화에 명분을 두고 있는 듯하나 경제위기를 틈타 「자본」의 우월적지위를 절대적으로 확보하자는 반인권(反人權)적 처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근로자는 임금이나 기타 근로조건의 결정에 있어서 경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다. 노조결성 단체협상 파업 등 이른바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체계는 이같은 근로자의 약점을 국가가 법으로 보완할 필요를 느낀 데서 비롯한 역사적 산물이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은 노조를 통하기 이전에 근로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국가가 최소한으로 보장하기 위한 고용질서법으로서 노동관계법 체계의 바탕이다. 국제노동기구(ILO)협약의 대부분이 근로기준과 관련한 것이고 노사 선진국이 근로기준에 관한 법을 따로 두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근거한 공법(公法)이다. 따라서 전경련 주장은 헌법정신의 부정이자 노동법의 세계적 추세나 역사성에 역행하는 것이다. 만약 근로기준법이 폐지되고 고용계약이 자율에 맡겨진다면 기업을 경영하기는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소년 여성근로자 보호나 강제노동규제 법정근로시간 등 최소근로조건이 모두 개별계약사항이 됨으로써 근로자의 권리가 크게 침해될 것이 뻔하다. ILO가 이를 묵인할 리 없다.
전경련은 노동3권을 활용한 노사협상으로 이같은 불균형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노조가 없는,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무엇으로 보호할 것인가. 근로기준법의 폐지는 어쩌면 노조결성과 노사대립을 촉발해 오히려 기업여건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