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46)

  • 입력 1997년 11월 5일 08시 34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4〉 비록 생긴 모양들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세 사람 탁발승의 행동거지는 단정했다. 집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실내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마에 손을 대고 정중히 인사를 한 다음 경의를 표하였다. 그리고는 주인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듯이 멀찌감치 서 있었다. 그러자 세 여자는 그들에게로 가 그들의 도착을 축하하는 등 친절하게 그들을 맞아 자리에 앉게 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서야 탁발승들은 두리번거리며 실내를 살펴볼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실내는 깨끗이 정돈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기분 좋은 방이었다. 램프불과 촛불은 은은한 빛을 발하여 방 안을 밝혀주고 있었고, 향 연기는 높이 피어올라 기분좋은 향기를 내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온갖 과자와 과일들이 가득하고 값비싼 술까지 있었으니 오랜 수도 생활에 지친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롭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들 세 사람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던 것은 세 사람의 여자였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젊고 아름다웠으니 긴 여행과 오랜 금욕 생활에 스스로를 은폐시켜 왔던 그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들 세 사람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외쳤다. 『알라께 맹세코, 이건 정말 놀라운 광경이야! 혹시 우리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분께서 우리를 시험하기 위하여 환영을 펼쳐보이시는 건 아닐까?』 그런데 다음 순간 그들의 눈에 띈 것은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는 짐꾼이었다. 『오, 이럴수가?』 짐꾼을 발견하는 순간 그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젊은 사내는 누구한테 얼마나 두들겨맞았는지 살이 벌겋게 되어 있는데다가 향락에 젖어 눈길이 완전히 풀려 있었던 것이다. 그 가엾은 짐꾼을 보자 세 사람은 외쳤다. 『오, 불쌍한 중생이여! 아랍인인지 외국인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들과 같은 거지 수도승인 것 같군!』 이 말을 들은 짐꾼은 벌떡 일어나더니 노기에 찬 눈으로 세 사람을 쏘아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너희 중놈들은 문에 적힌 글도 읽지 못했어? 거지꼴로 남의 집을 찾아와서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다니,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짐꾼이 이렇게 쏘아붙이자 세 사람의 방문객은 짐꾼 앞에 정중히 사과했다. 『오, 고명하신 탁발승이시여, 제발 저희들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세 사람의 방문객은 짐꾼을 탁발승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짐꾼은 거기에 대해서는 굳이 해명하지 않고 진짜 탁발승들을 향하여 일장 훈시를 했다. 세 사람의 탁발승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당신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짐꾼과 탁발승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이 예기치 못한 사태를 보고 여자들은 허리를 잡고 웃어댔다. 그러던 끝에 그녀들은 짐꾼과 탁발승 사이를 화해시켰다. 사태가 수습되자 여자들은 세 사람의 길손들을 식탁에 앉게 하고 음식을 대접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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