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무책임한 기아 경영진

  • 입력 1997년 10월 23일 19시 40분


기아그룹의 운명이 결정된 22일 기아그룹 경영진과 노조는 『김선홍(金善弘)회장이 동경 모터쇼 참석차 국내를 비운 새 법정관리를 기습적으로 결정했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또 『화의신청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정부가 그룹에 한마디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이는 당초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시각은 극히 적다. 지난주 주가가 폭락하고 연쇄부도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기아사태 조기처리 방침을 시사했었다. 그런데도 그룹 수뇌부인 김회장과 박제혁(朴齊赫)기아자동차사장은 21일 동경 모터쇼 출장을 강행했다. 그리고 정부 방침이 발표된 뒤 부랴부랴 귀국했다. 『그룹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에 수뇌부가 자리를 비운 것은 사태해결 의지를 의심케 한다』는 불만이 직원들 사이에서도 터져나왔다. 기아사태 1백일간 정부와 기아 어느 쪽도 진지하게 협의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7월 부도유예협약 적용후 김회장과 정부 인사가 만난 것은 딱 한번뿐이었다. 법정관리 방침 확정후 기아 경영진이 내놓은 대책도 마찬가지다. 기아측은 무조건적 화의 수용만을 거듭 촉구했다. 기아 경영진은 『법정관리 결정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파장은 모두 정부의 책임』이라며 노조 파업을 말릴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한 경영자는 『5만여 종업원과 함께 죽을 각오다. 죽더라도 그냥 죽지는 않겠다. 정부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기아자동차의 한 사무직 근로자는 『경영진이 사원과 협력사, 국가경제를 볼모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경제의 더 큰 희생을 초래하고서라도, 파업을 부추겨서라도 경영권만은 유지해야겠다는 심산이라면 그건 책임경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영이<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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