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상위 4대 재벌은 기업 총매출액의 47%, 수출의 절반을 담당한다. 농업에서 제조업 언론에 이르는 문어발식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은 경제발전의 견인차였고 아시아 경제발전의 모델이었다. 이런 재벌그룹이 최근엔 경쟁력을 상실하고 빚 더미 위에서 허우적댄다. 올들어 6개 재벌이 도산했고 연말까지 4천여개의 대기업과 중견기업 파산이 우려된다. 한국 재벌의 고통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가 「비틀거리는 거인들」이라는 기사에서 분석한 한국경제와 재벌의 실상이다. 영국보다 30%나 높은 제조업 임금과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서울의 물가, 지지부진한 금융 및 노동시장개혁 등이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아들 손자가 계열사를 경영하고 가족의 부(富)를 형성하는데 주력하는 재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이 잡지는 진단한다
▼「아시아 경제의 기적」에 대한 해외 석학과 언론의 논란은 뜨겁다. 미국 MIT대 루디 돈부시교수는 아시아는 자유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에서 혼란을 겪고 있을 뿐 경제의 역동성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반면 같은 대학의 폴 크루그만 교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공업국에는 기적이 존재한 적이 없으며 다만 저축과 장시간노동 등 자원의 동원에 의한 성공에 불과하다며 성장한계론(땀이론)을 편다
▼아시아 4룡(龍)을 주시하라는 말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고성장과 번영이라는 부러움의 대상에서 이제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시행착오의 모델로 전락했다. 한국경제를 놓고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논쟁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해외 전문가들의 낙관적인 주장만 끌어다가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경제난의 실체를 감추려 해선 안된다. 정부와 기업은 듣기 좋은 말보다 뼈아픈 충고에 귀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