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정감사가 대통령선거전의 제물(祭物)이 되어 제 기능을 못한 채 끝났다. 대선(大選) 때문에 일정이 예년보다 이틀 줄어든데다 국감(國監) 본래의 기능인 대정부 견제 감시는 뒷전으로 밀렸다. 미국의 슈퍼301조 발동, 수입쇠고기 O―157 검출, 기아(起亞)사태, 경부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문제 등 굵직한 국정현안과 민생문제도 소홀히 다뤄졌거나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
이번 국감은 상대 후보에게 상처를 주려는 여야의 정략에 따라 초반부터 대선 대리전처럼 전개됐다. 그래서 경기도 감사는 「이인제 감사」, 서울시 감사는 「조순 감사」, 국방부 감사는 「이회창 감사」로 둔갑했다. 특히 중반에 여당의 폭로로 야기된 「김대중 비자금」 파문은 대검찰청 법무부 안기부 은행감독원 재정경제원 등 여러 부처에 대한 감사를 「김대중 감사」로 변질시키면서 국감을 「비자금 광풍」에 휩쓸리게 했다.
여야가 대선에만 당력을 쏟다보니 국정이 심각하게 흐트러진 때에 오히려 국정이 제대로 점검되지 못하는 중대한 모순이 나타났다. 여야도 뒤바뀌어 여당은 무차별 폭로전을 벌이며 이에 쉽게 동조하지 않는 정부를 몰아세웠고, 야당은 이를 방어하거나 공무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당보다 더 정부를 봐주기도 했다.
정기국회 국감은 예산심의를 위한 기초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국감이 건성으로 지나갔으니 예산심의인들 잘될지 걱정이다. 이번 주부터 시작될 본회의와 상임위도 국감의 재판(再版)이 될 공산이 크다. 여야는 이제부터라도 국회를 정상화해 국정현안과 민생문제를 꼼꼼히 챙기고 예산을 충실히 심의해주기 바란다. 그런 정당이 대선에서도 국민의 지지를 더 받을 것이다. 국정난맥과 민생동요, 그리고 졸속예산은 고스란히 다음 정권의 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