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사회봉사명령의 허와 실

  • 입력 1997년 10월 17일 20시 11분


▼남편을 독살한 여인이 포승에 꽁꽁 묶여 어전(御前)에 대령한다. 왕은 독부(毒婦)에게 사회봉사 5년을 명령한다. 여인은 형리에게 끌려나가면서 『나는 그 놈을 죽임으로써 사회봉사를 다했습니다』고 항변한다. 브랜트 파커와 조니 하트가 최근 그린 미국 신문만화의 한 장면이다. 사회봉사명령은 집행유예나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범죄인에게 일정기간 무보수로 사회봉사활동을 시키는 형벌이다 ▼70년대부터 서구에서 시작된 사회봉사명령이 올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돼 시행 10개월째를 맞는다. 사회봉사를 통해 속죄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과거 집행유예로 그냥 풀어주던 것보다는 진일보한 형사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집행유예를 받은 범법자의 약 15%가 사회봉사명령을 함께 선고받고 있다. 이들은 재활원 양로원 사회복지관 병원 등에서 장애인보조 환자간병 청소 세탁 쓰레기분류 풀뽑기 등을 한다 ▼이래저래 요즘 고아원 양로원 재활원은 봉사자들로 만원이다. 내년부터 서울시내 고교가 내신 출석 사회봉사활동성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사회복지 시설은 중학생들로 붐빈다. 병무청은 병역의무의 형평을 위해 신체 5급 판정이나 학력미달로 징집이 면제되는 사람은 사회봉사활동을 하도록 병역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이회창(李會昌) 신한국당 총재의 장남 정연씨도 소록도에서 사회봉사활동중이다 ▼그러나 법무부에 따르면 올 1∼9월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피고인 1만9천여명중 절반 가량이 제대로 봉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당을 주고 대리참석시켰다가 적발되거나 아예 줄행랑을 치는 사람이 상당수라고 한다. 출근 도장만 찍고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 점호때 머리를 내미는 얌체도 많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봉사가 아니다보니 이렇다.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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