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衆口難防 개헌논의

  • 입력 1997년 9월 22일 20시 31분


지금 정국혼미를 부채질하는 최대 이슈는 개헌론이다. 여든 야든 대선후보를 낸 진영이면 모두 무분별하게 권력구조 개편론을 쏟아놓아 국민이 온통 헷갈리고 있다. 현행 권력구조의 개선방향을 분명하게 잡은 다음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의원내각제인지,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인지, 그도 아니면 현행 대통령제를 지키되 중임(重任)조항을 신설하자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주의주장들을 안개처럼 피우고 있다. 신한국당의 이회창(李會昌)대표는 그저께 개헌문제에 대해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누가 봐도 개헌을 고리로 한 타진영과의 연대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차기정권에서의 내각제개헌을 약속하거나 이원집정부제로 가기위해 다리를 놓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올만 했다. 그러나 이대표는 다시 하루만에 부연설명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애매하게 흐려 놓았다. 그는 어제 『대선전 개헌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앞으로 국민 의사에 따라 권력구조 문제를 논의할 수 있고 정계개편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번에도 딱 부러지게 어떤 제도가 좋고 그것을 어떻게 차기정권에서 추진해 나가겠다는 설명은 없었다. 공당의 대통령후보가 나라운영의 골간인 권력구조와 정계개편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 없이 무엇이든 검토할 수 있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만 하니 국민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도 그렇다. 차기정권에서의 내각제개헌을 담보삼아 자민련과 후보단일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 국민회의측이 사실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부문서가 공개됐다. 여기에는 연합정부 구성안과 대통령중임제를 명시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고 한다. 여당이 이쪽저쪽 눈치를 살펴 속내를 감추는 것이나 야당이 겉과 속이 다른 행보를 보이는 모습은 심하게 말하면 시정의 투전판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여야가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개헌 얘기를 꺼내지만 결국 속셈은 한가지다. 어느 누구도 자력으로는 대선승리가 어렵다고 보아 이리저리 짝짓기와 합종연횡을 통해 표를 모으자는 것이다. 타후보진영에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 보수대연합이든 후보단일화를 이뤄 우선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다급한 심리가 개헌론이나 권력구조 개편론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특정후보를 고립시켜 대선승리를 엮어보겠다는 계산도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나라의 기본틀인 헌법과 막중한 권력구조 개편문제를 정당들이 정략적으로 대선 표낚기와 연계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현행 제도를 바꾸려면 공약으로 만들어 국민앞에 상세히 밝히고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는 것이 옳다. 개헌을 정략의 도구로 삼는 정당은 절대로 국민을 위한 정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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