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위성을 쏘아 올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돈이 나오는 땅을 먼저 차지한다」.
세계적인 통신업체인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과 스웨덴 에릭슨은 불꽃 튀는 차세대 위성통신 서비스 선점 경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 회사는 기존 위성을 활용해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위성전화와 미래형 휴대단말기 개발에 주력하며 차세대 위성 사업의 실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영국 런던 번화가에 본사를 둔 BT. 이 회사의 활동무대는 더이상 영국만이 아니다. BT는 다국적 통신서비스업체로 지구촌 통신시장을 누비고 있다. 최근엔 미국통신회사 MCI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세계 통신시장을 손에 넣으려 힘쏟고 있다.
통신 분야의 스타워스로 불리는 21세기 차세대 위성통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 회사가 선택한 길은 매우 이색적이다.
다른 회사들이 통신위성을 하늘에 쏘아 올리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반해 BT는 위성 쏘기에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고 있다. 국내의 한국통신 데이콤 SK텔레콤 삼성전자 등도 세계 위성이동통신 서비스(GMPCS) 사업자인 이리듐 ICO 글로벌스타 오딧세이 등의 거대 프로젝트에 앞다퉈 지분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BT가 투자를 않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BT는 이미 거대한 인력과 자본 기술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위성통신 사업에 대해 현실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돈이 되는 것부터 하자」.
위성통신의 미래는 물론 화려하다. 하늘 위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촌 오지에서도 자유롭게 전화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팩스 송수신과 인터넷 전자메일을 띄울 수 있다. 지하에 매설된 전화망이 마치 하늘에 설치된 셈이다.
그러나 BT의 판단은 여기에 매달려 있지 않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상용화될 위성통신 서비스의 전망은 아직까지 불투명하다는 것. 첨단이라고 해서 무조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낙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셀룰러 휴대전화 분야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에 BT는 주목한다. 게다가 각 국 이동통신 사업자간에 휴대전화를 서로 연결해주는 국제 로밍(상호접속) 서비스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BT의 위성사업부문을 총괄하는 롭 어윈 본부장은 『위성통신을 활용한 전화는 셀룰러 휴대전화보다 통화료가 매우 비싸고 크다』며 『위성이동통신은 이동통신의 보조수단일 뿐』이라고 잘라말한다.
그러면 BT는 위성이동통신을 포기한 것인가. 결코 아니다. 이 회사는 노르웨이 통신업체인 텔레노르와 손잡고 「모빅(MOBIQ)」이라는 휴대용 위성전화 상용서비스를 1월15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BT의 모빅 폰은 79개국이 참여해 범용 통신위성으로 쓰고 있는 인말새트 위성을 이용해 세계의 98%를 단일통화권으로 하는 위성전화 서비스다.
모빅 단말기도 기존 냉장고만한 무거운 인말새트 전화시스템에서 벗어나 크기는 보급형 팩시밀리 정도에 무게는 2.4㎏에 불과하다.
BT 모빅 서비스 가입자는 현재 세계를 통틀어 5천명. 올 연말까지는 가입자가 적어도 1만5천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모빅은 곧 등장하는 위성이동전화보다는 비교적 불편하고 단말기 값과 통화료가 비싼 편이지만 위성전화 서비스 개시에 앞선 시장 선점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모빅 폰을 통한 보이스(음성)메일과 팩스메일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까지 선보이고 있다.
BT측은 『앞으로 모빅 폰의 크기와 무게를 점차 줄여가는 동시에 부가서비스로 인터넷과 느린 동영상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며 『모빅은 GMPCS가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는 2000∼2002년까지는 충분한 시장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같은 BT의 시장 전략은 스웨덴 스톡홀름 교회에 위치한 거대 이동통신업체 에릭슨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셀룰러통신의 대부격인 에릭슨 역시 BT와 마찬가지로 내로라하는 GMPCS 프로젝트 사업에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에릭슨의 스테판 레이네퓨오드 위성전화 사업본부장은 『유럽의 디지털 휴대전화 표준 GSM 방식의 휴대전화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 유럽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지역에서도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다』며 『인구가 밀집한 세계 주요 대도시에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위성전화의 추가 수요는 매우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에릭슨은 비즈니스에서 돈이 되는 사업에 나몰라라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 이 회사는 세계적인 통신단말기 생산업체답게 위성전화 시장이 형성되는대로 GMPCS 위성전화 단말기를 양산할 계획이다.
대다수 GMPCS가 GSM 방식의 뿌리가 되는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이라 에릭슨은 따로 큰 투자를 하지 않고도 위성전화 단말기를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에릭슨은 자사 위성전화 단말기는 기존 휴대전화로도 겸용해 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단말기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고 자부하고 있다.
BT와 에릭슨의 이같은 위성 사업 전략은 국내 대기업과 통신업체들이 너나할것없이 엄청난 돈을 써가며 초대형 GMPCS 프로젝트에 지분참여하고 있는 현실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BT와 에릭슨 이 두 회사는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GMPCS 사업에서 누가 성공하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셀룰러 겸용 위성전화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위성통신 사업 분야에서 일단 승자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런던·스톡홀름〓김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