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최수정/응급환자 수송 앰뷸런스 채소운반

  • 입력 1997년 9월 6일 08시 14분


지난 토요일 퇴근길이었다. 아파트단지 입구의 상가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쯧쯧 누가 아픈 모양이구먼』 가게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나도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귀를 찢을 듯 커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강남 S병원의 앰뷸런스가 상가앞을 지나 쏜살같이 달려갈 때까지만 해도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앰뷸런스는 우리가 사는 아파트 앞에 정확히 멈춰섰고 운전사가 황급히 뛰어내리는 게 아닌가.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집에 계셨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앰뷸런스를 쫓아 달렸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뒷문을 연 운전사는 앰뷸런스에서 채소를 느릿느릿 내려놓기 시작했다. 겨우 채소를 운반하자고 신호를 무시하며 수많은 차량들의 양보를 받아낸 이유는 묻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몇몇 「양치기소년」 때문에 정말 위급한 환자가 앰뷸런스나 사고현장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이미 내 주위에는 사이렌을 켠 앰뷸런스가 뒤에 따라와도 『저거 진짜야』 하며 선뜻 길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수정(서울 강남구 대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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