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닥터/신세대 出産]달라진 풍속도

  • 입력 1997년 8월 31일 09시 23분


「남자가 아기를 낳는다」. 영화속의 한 장면을 상상했다면 오해. 출산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아기는 여자만 낳는 것이 아닌 세상이다. 지금껏 남편들에겐 출입 통제 구역으로만 여겨졌던 분만실 풍경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아기를 낳는 순간까지 남편과 아내가 일심동체로 수련해야 하는 라마즈분만법이 신세대들에게 인기다. 지난 87년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참여 인구가 늘고 있다. 강의가 개설된 강남차병원 삼성서울병원 인천길병원 등은 몰려드는 신청자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가장 규모가 큰 차병원의 경우 지금까지 모두 2천명이 다녀갔다. 이 병원은 최근 강좌의 수강인원을 한 기에 20쌍에서 40쌍으로 두배 늘렸다. 금기처럼 생각되던 분만실도 원하는 남편에게 개방되는 추세. 밖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초조함을 달래는 남편의 모습은 이제는 옛날 얘기. 바야흐로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첫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신세대들은 모든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병원측에서 성급한 남편들을 위해 알아서 배려를 해주기도 한다. 「탯줄 끊기」와 「아기와 첫 눈맞추기」가 남편 몫으로 돌아간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탯줄을 직접 끊는 경험은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된다. 바깥 세상에 나온 아기가 처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볼 때 느낀 감동도 평생 잊기 어렵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기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도 아빠 몫이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에서 출산후 떨어진 배꼽까지 아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꼼꼼히 챙긴다. 비디오세대답게 분만실에서 신생아실로 옮겨지는 동안 미리 준비한 캠코더를이용, 생생한 아기의 모습을 찍기도 한다. 장미꽃 한 다발이 출산의 대미를 장식한다.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붉은 장미꽃 1백송이를 안겨주는 게 요즘 유행이다. 남편이 건네주는 한아름의 꽃다발. 순간 흐르는 감동적인 눈물과 함께 출산에서 겪었던 고통은 어느새 잊혀진다. 〈홍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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