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

  • 입력 1997년 8월 26일 08시 33분


[아벨 등 지음/푸른숲 펴냄] 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19세기말 프랑스사회의 금기를 깨고 남녀의 관능성을 과감하게 조각에 도입한 당찬 여성. 가부장적 결혼제도에서 벗어나 예술적 상상력의 유토피아를 갈망했던 여성. 그러나 우리는 이 위대한 조각가 클로델을 천재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24년 연하의 연인 혹은 성적인 파트너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 과연 클로델은 로댕 없이는 불가능했던, 로댕에 종속된 여성에 불과한가.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푸른숲)는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미국 MIT의 이사벨 드 아벨교수 등이 집필한 이 책은 창작과 성생활을 함께 한 미술가 작가 열쌍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이 그들만의 능력으로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는지를 되짚는다. 아울러 예술적 성적 유대감을 나누어온 예술가 커플이 서로의 예술세계에 끼친 영향을 면밀히 추적, 그들의 예술과 인생을 새롭게 펼쳐보인다. 등장인물은 로댕과 클로델을 비롯, 동성애의 불꽃으로 문학에 몰입했던 영국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 웨스트, 프랑스작가 앙드레 말로와 그의 그늘에 가렸던 아내 클라라 말로 커플 등. 로댕과 클로델로 돌아가자. 조각가로서의 좌절, 로댕과의 결별로 인해 정신병을 얻고 30년간이나 정신병수용소에서 지내야 했던 클로델의 비극적 운명. 그러나 저자는 이를 클로델이라는 한 여성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당시 남성중심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즉 클로델을 로댕에서 해방시켜 한사람의 조각가로 새롭게 복원하려는 것이다. 물론 섣부른 결론은 유보한다. 클로델 스스로가 로댕의 성적인 대상으로 남으려 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 동성연애자이며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의 이야기는 클로델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10여년의 동성연애 기간중 이들의 성적인 관계는 서로에게 엄청난 문학적 에너지였다. 버지니아가 그 유명한 「세월」의 집필에 들어간 것도 이 무렵.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그저 성적인 것만이 아니었음을 저자는 꿰뚫어 보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년기 성적 학대와 같은 치욕스러운 상흔까지도 서로 껴안아 줄 수 있었던 영혼의 만남이었음을. 성(性)으로 인한 방황과 좌절 속에서도 성에 함몰되지 않고 끝내 예술의 진정한 성(聖)스러움을 이끌어냈던 예술가들의 정신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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