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광복절 태극기와 한반도 현실

  • 입력 1997년 8월 14일 20시 25분


▼71년 8월12일 崔斗善(최두선)대한적십자사총재는 KBS 라디오방송을 통해 역사적인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남북간의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적십자회담 제의였다. 남북으로 흩어진 1천만 이산가족의 비극이 단시일내에 해소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소식을 알려주며 재회를 알선하는 가족찾기운동만이라도 우선 전개해 분단의 비극을 줄이자는 호소였다 ▼북한적십자회의 호응으로 남북적십자는 판문점에서 5차례의 파견원 접촉, 25차례의 예비회담을 거쳐 72년8월 평양에서 역사적인 제1차 본회담을 열었다. 온겨레는 물론 전세계의 관심과 기대를 모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회담은 지지부진했다. 85년 9월 각각 1백51명으로 구성된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교환방문을 겨우 실현시켰을 뿐이다. 그해 12월 제10차 서울 본회담이후에는 아예 중단된 상태다 ▼지난 12일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26주년을 맞아 鄭元植(정원식)대한적십자사총재가 이산가족면회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북한측과 협의, 추진하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았다. 면회소설치 문제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인도적 문제의 해결」조항에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북경(北京)에서 있은 일련의 식량지원을 위한 남북적십자 접촉이 순조로운 점으로 미뤄 가능성을 탐색해 볼 만하다 ▼오늘 52주년 광복절과 대한민국정부수립 49주년을 맞아 태극기를 내거는 마음은 지난해와 다름없이 무겁다. 분단의 아픔이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8선에 이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남북간의 팽팽한 긴장과 무력대치는 숨을 막히게 한다. 분단의 장벽을 조금이라도 열어 이산가족의 교환방문과 우편물교환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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