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정준영/친일내각이 쓴 「大漢門」현판 고치자

  • 입력 1997년 7월 31일 07시 45분


일제는 침략초기부터 조선의 5대 궁궐에 대하여 주눅이 들어있었다. 자연경관과 조화로운 조선 궁궐의 웅장한 모습은 가위 일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 5대 궁궐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조선의 자존심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 일제는 경복궁내 수많은 전각들을 철거한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세우는가 하면 경희궁을 철거하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1904년 덕수궁이 대화재로 파괴됐는데 을사늑약을 체결케 한 이토통감은 엉뚱하게도 1906년 덕수궁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그런 과정에서 1897년 이후 대궐문 처마밑에 걸려 있던 대안문(大安門)현판을 떼어내고 지금의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달았다. 덕수궁의 본래 정문은 옛 법원쪽 흥화문(興化門)이다. 청일전쟁 후 1897년 지금의 조선호텔 경내에 원구단을 쌓고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기에 앞서 그와 마주보이는 덕수궁 한모퉁이를 헐고 대궐문을 세우고 이름을 대안문이라 했다. 고종황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뜻에서 대안문이라 했던 것이다(유물926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安)자를 악한(惡漢) 괴한(怪漢) 사기한(詐欺漢) 등과 어울리는 한(漢)자로 바꿔넣었으니 우리가 어찌 이를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앞을 매일 지나다니는 우리들은 대한문 현판 글씨가 친일내각의 내무대신 남정철의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1906년 이토통감에 의하여 끌어내려진 대안문 현판은 지금도 어느 창고에서 통곡하고 있을 것이다. 정준영(서울 양천구 신월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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