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레이니 전(前)주한미국대사와 샘 넌 전미상원의원이 오는 20일 북한을 방문한다. 이들의 방북(訪北)은 시기적으로나 방문의 성격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과거 몇몇 미국인사들의 북한 방문에 비해 크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 8일 金日成(김일성)의 3년 탈상을 끝냈다. 金正日(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식량사정이 악화되어 있는 가운데 다음달 5일에는 4자회담 예비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북한내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러한 때에 북한을 방문하는 이들은 사실상 특사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클린턴행정부의 입장을 누구보다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비록 민간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북한 당국자들과 해야 할 얘기는 자명하다고 본다. 현시점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이 왜 절실한 과제인가, 4자회담과 남북대화는 왜 중요한가, 北―美(북―미)양자 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이며 지금 국제사회는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체제 위기를 맞고 있는 북한은 현재 외부의 움직임에 어느 때보다도 민감하다.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길을 외면하고 자칫 오판을 해 전쟁도발이라는 최악의 모험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극단적인 위기감과 불안정한 심리를 순화하는 역할도 지금으로서는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며칠 전 黃長燁(황장엽)전 북한 노동당비서가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한 충격적인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평양방문이 북―미관계에 어떤 비밀스러운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 우려도 없지 않다. 북―미관계가 남북한 관계를 앞질러 가는 일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이 한국을 제쳐놓고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면 한반도 정세에 이로울 것이 없다. 이와 관련한 협의가 한미 양국간에 충분히 있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북한당국자들은 누구보다도 남북한의 현실을 잘 아는 이들 인사의 얘기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구태의연한 외교적 제스처로만 생각하지 말고 좀더 발전적인 자세로 진지한 대화를 가져 폐쇄의 울타리를 걷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레이니 전대사와 넌 전상원의원의 이번 북한 방문이 특사든 개인자격이든 큰 성과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