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34)

  • 입력 1997년 7월 9일 07시 46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87〉 그날로 나는 전에 내가 입었던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왕궁을 나섰습니다. 그러한 나를 왕도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왜 왕궁을 버리고 길거리로 나섰느냐고요? 그건 내 사랑스런 공주와의 그날 밤 사랑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만약 내가 그날밤 일로 왕으로부터 한 그릇의 밥이나 한푼의 동전이라도 받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나는 정조를 팔아 먹고 사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습니까? 비록 걸인이 될지언정 나는 결코 그 아름다운 공주와 나눈 사랑의 대가로 어떤 보상도 받아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날밤 일로 내가 받은 최대의 선물이라면 아직도 내 몸에 묻어 있을 공주의 향기와 피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내 귓전에 쟁쟁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내 몸 구석구석 느껴지는 그녀의 촉감이랍니다. 처음 한동안 나는 시내에서 동냥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시내에서마저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 대한 소문이 온 도시에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그 「고결한 성자」를 만나보기 위하여 구름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주에 대한 내 사랑을 이해할 리 없는 사람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나에게는 슬픔을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바닷가 어느 동굴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 동굴 속으로 거처를 옮긴 뒤 나에게 유일한 행복은 그 사랑스런 공주님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눈, 코, 입, 귀, 이마, 뺨, 턱을 떠올리며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웃곤 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그녀의 향기와 촉감, 그녀의 속삭임을 떠올렸습니다. 그날밤 나의 그 무자비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바둥거리던 그녀의 모습, 그녀의 비명소리, 그녀의 그 정갈하고도 따뜻한 몸 속 깊은 곳, 그녀가 흘린 피를 생각하면서 꿈 속에서도 나는 행복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공주님의 그 예쁜 젖가슴을 좀더 어루만지지 못한 것, 공주님의 그 사랑스런 입술에 좀더 많이 입맞추지 못한 것, 공주님의 그 귀여운 귓바퀴를 좀더 만지작거리지 못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그 뜨거운 정사가 끝난 뒤 두번 다시 그 감미로운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는 점도 나에게는 지울수 없는 한이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온통 공주님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나는 급기야 나무꼬챙이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말았답니다. 내가 죽어간다는 소문은 도시에까지 전해졌고, 내가 죽기 전에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나의 사랑스런 공주님이 나의 동굴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공주님이 나를 찾아왔지만 그때 나는 의식마저도 희미한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본 공주님은 그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오, 그리운 분, 제발 눈을 뜨시고 저를 바라보세요』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번쩍 정신이 들어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는 순간 나는 이게 꿈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꿈에도 그리던 공주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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