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주택]이일훈/일산 13블록 다가구주택

  • 입력 1997년 7월 7일 08시 20분


신도시에 들어서는 주택은 기존 도시의 주택과 어떻게 다른가. 신도시는 여러 도시설계 규제로 인해 오히려 다양성의 홍수를 이뤄 난잡하기 쉽다. 경사지붕을 꼭 만들어야 하고 옆집과 같은 용도와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획일적 지침이 오히려 정체불명의 무국적 도시를 목격하게 한다. 그 도시를 하나하나 건축물이 채우고 있다. 도시와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각개의 건축이 건축적으로도 훌륭하고 도시적 시각으로도 바람직한 요건을 충족하기는 참 어려운 숙제다.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의 큰 차이점은 외부공간의 활용 가능성에 있다. 아파트 연립주택 등의 형식은 방과 방이 두겹 세겹으로 붙어 있어 어느 한쪽이 남쪽이면 반대면은 반드시 어둡게 마련이다. 더구나 면적이 넓을수록 어두운 방이 많이 생기게 돼 있다. 그런 집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생기가 돌지 않는다. 「채나눔」방식은 내가 주장하는 설계방법론이다. 모든 공간을 가능한대로 나누자는 말이다. 그래서 방과 방이, 채와 채가 연결되듯이 만들자는 뜻이다. 채와 채 사이에는 통로와 마당이 숨통이 되어 그 외부공간이 집의 여유로움을 만드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홑집 만들기 또 홑켜 구성방식이다. 모든 방이 덜 겹치면 채광 환기 등에서 한결 자유롭고 자연과의 자세는 친화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나눔으로 풍부한 외부공간을 얻을 수 있고 그 사이사이에 풍경이 스며들어 집이 지니는 공간이 내부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효과도 얻게 된다. 내가 설계한 일산신도시 13블록 다가구주택의 경우 일층 임대가구는 동서로 나누고 이층 주인집은 남북으로 나눈후 사랑방을 별채로 꾸몄다. 별채의 지붕은 삼층에서는 장독대 역할을 하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ㄷ자 구성인데 가운데에 마당을 만들었다. 답답한 도시에서 마당은 필수공간이다. 마당이 있어 집이 더욱 좋다는 주인의 생활담은 얘기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무릇 집이란 어디 한구석숨통이있어야한다.숨통이 없으면 닭장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도로에 면한 쪽을 무뚝뚝하게 하고 내부공간을 다양하게 만든 것은 오랫동안 싫증 안내고 살아갈 주인을 위한 배려였다. 요란한 치장과 유행은 누구나 금방 싫증을 내게 마련인데 집도 예외가 아니다. 집은 결국 공간으로 말한다. 이일훈<이일훈연구소 대표> ▼약력 △한양대 건축공학과졸 △경기대 건축공학과 출강 △경기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대구지방경찰청 환경조형물 당선 △서울시건축상 수상 02―336―0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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