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賢哲(김현철)씨가 지난 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직후 대선자금 잔여금으로 보이는 1백억원대 비자금을 차명(借名)으로 불법 실명전환했다는 보도는 또다른 충격이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검은돈의 흐름을 막겠다며 실명제를 전격 실시할 때 아들은 아버지의 그늘에 숨어 부정한 돈을 빼돌려 세탁하며 은닉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막상 검찰수사 결과 사실임이 확인되자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때에 김대통령은 92년 대선자금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뿐 아니라 공직자 비리를 척결하겠다며 사정(司正)의 칼을 들었다. 차남이 관리한 대선자금이나 그 잔여금 비리에는 속시원한 해명을 않으면서 어떻게 남의 잘못을 캐내 단죄하겠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결코 공정한 처사가 못된다.
검찰수사로 드러난 현철씨의 비자금 관리수법은 매우 부도덕하다. 보도에 따르면 대선자금 잔여분을 가명으로 보관하던중 실명제가 실시되자 다른 이름으로 실명 전환하고 바로 현금과 수표로 빼내 金己燮(김기섭) 李晟豪(이성호)씨에게 맡겨 관리했다는 것이다. 이런 돈굴리기 수법이 대통령의 아들이라 가능했던 것은 아닌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아버지가 개혁을 외칠 때 아들이 법을 어기며 겁없이 돈관리를 해온 게 사실이라면 김대통령도 도의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따져보면 현철씨 비리의 시작은 92년 대선자금이다. 그는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 이른바 별건(別件)으로 구속됐지만 부정한 돈을 만들고 관리하기 시작한 건 92년 대선 때부터였음이 검찰수사로 확인됐다. 당시 쓰고 남은 돈이 비자금의 「씨돈」이 됐다는 얘기다. 이는 결과적으로 김대통령이 현철씨 비리와 무관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당연히 대통령이 국민 앞에 의혹의 사실여부에 대해 해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지않고 가타부타 언급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의혹이 더욱 확산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청와대가 공직사회에 대한 대대적 사정방침을 밝히고 대통령이 대선자금 불공개 입장을 표명하자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사정할 수 있는가』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야권은 하야(下野)까지 들먹이며 대선자금 공개와 국면전환용 사정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사정대상 공직자의 숫자와 명단까지 검찰에 통보한 사실이 드러나자 의도가 뻔한 기획(企劃)사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스스로의 흠은 씻지 않고 남의 잘못을 캐는 사정에는 승복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김대통령이 대선자금에 대해 국민 앞에 진솔하게 해명하기를 촉구한다. 현철씨 비자금 대부분이 대선자금 잔여분인 것으로 드러난 지금이 털어놓고 밝힐 수 있는 적기(適期)다. 그러지 않는 한 사정은 물론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수행도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