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철환/선생님의 「큰 사랑」

  • 입력 1997년 5월 10일 09시 49분


웃는 모습이 들국화 같은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가까이 뵈어도 눈부시지 않고 멀리 계셔도 결코 희미하지 않은 고결한 모습의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선생님을 찾아뵙는데 모든 기쁨과 슬픔을 살갗 아래 감추시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신다.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신 선생님은 언제나 도시락을 싸 오셔서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드셨다. 번호대로 순번을 정해 매일 5명의 아이들을 불러 선생님 책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셨다. 혹시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밥의 반을 뚜껑에 덜어 나누어 드셨다. 가난한 아이가 김치 하나만을 싸오면 다른 반찬은 안 드시고 오직 그 김치 하나만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시며 그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특히 내가 선생님을 잊지 못하는 기억이 하나 있다. 우리 반의 한 학생이 적지 않은 돈을 교실에서 분실했다. 모든 학생들이 과학실험실로 이동했다가 돌아왔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됐다. 분명한 건 교실 문이 그동안 잠겨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는 점이다. 선생님께서는 반 학생들 모두에게 백지 한 장씩을 나눠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의 돈을 훔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잘못을 뉘우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없어진 돈은 선생님이 채워 놓을 테니까 여러분 중 돈을 훔친 사람이 있으면 반성문을 적으며 뉘우치기 바란다. 이름은 안써도 좋다』 한참 후 선생님은 종이를 거두셨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더 기다리겠다.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은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든지 아니면 내 책상에 쪽지라도 남겨 주기 바란다. 오늘 청소 당번들은 그냥 돌아가라. 그날까지 선생님이 혼자 교실청소를 하겠다』 선생님은 매일 청소를 하시며 그 학생을 기다리셨다. 거의 보름째 되던 날 선생님은 청소일을 그만 두실 수 있었다. 선생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돈을 훔친 아이가 잘못을 뉘우친 것이다. 그 선생님의 큰 사랑은 기나긴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고 제자들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철환(서울 강동구 성내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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