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그래도 청문회는 필요하다

  • 입력 1997년 4월 28일 20시 25분


등산은 왜 하나. 산을 위해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25일 金賢哲(김현철)씨를 청문회증인으로 세운 「小山(소산)등반대회」는 그 반대였다. 그래서 TV를 통해 「대리등산」을 한 국민들은 실망했다. 이번 등산대회의 목적은 이 산속에 숨겨져 있다는 「한국의 보물(韓寶)」찾기. 그러나 산은 등산객을 비웃었다. 『없다』 『모른다』 『그렇지 않다』는 메아리로 등산객의 기를 꺾었다. ▼목적 못이룬 「小山 등반▼ 그래서 「실체적진실」에는 접근도 하지 못한 채 숱한 소문의 골짜기와 의혹의 벽, 비밀의 동굴 만을 지나오는데 만족해야 했다. 구경거리는 오히려 국민을 대신해 산에 오른 특위위원들의 「경쟁」아닌 「싸움」이었다. 이들은 泰守嶺(태수령) 源譜根 雙峯(원보근 쌍봉) 泰重臺(태중대) 己燮嶽(기섭악)에 올랐을 때의 구태를 재연했다. 내려가기 위해 올라온 듯한 한 팀은 『거봐라, 있긴 뭐가 있느냐』며 빨리 하산하자고 재촉했다. 다른 팀은 『왜 이 산에는 길이 없느냐』고 호통만 치다 맥없이 내려오고 말았다. 단지 소득이 있었다면 이 산에 와서 빌면 승진이나 공천, 이권을 따내는데 탁월한 효험이 있다며 얼마전까지도 뻔질나게 이 산을 들락거렸던 몇사람의 족적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러나 산의 효험이 떨어진 탓인지 발자국의 주인들은 한사코 산에 간 사실조차 부인했다. 그 때마다 많은 독자들이 화 난 목소리로 본보에 전화를 걸어왔다. 총론은 『저런 청문회를 왜 하느냐. 당장 때려치우라』는 것이었고 각론은 『의원, △△△의원은 자질이 모자라니 갈아치우라』는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판을 깨자』는 「청문회 무용론」이나 『저런 사람이 어떻게…』라며 「국회의원 자질론」을 주장하는 상당수 독자들의 목소리는 청문회 분위기와 특위위원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여야 싸잡아 비난하기」 「지지하지 않는 정당 욕하기」 「지엽적인 문제로 자기주장 강변하기」 「본질에서 벗어난 말꼬리 잡기」 등등….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래도 청문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국민에게 속시원한 청문회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청문회 자체보다는 청문회를 운영하는 사람 탓이기 때문이다. 비록 청문회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절대로 청문회 증언대에 설 것 같지 않았던 「거물」이 겉으로나마 국민에게 고개를 숙인 것, 내가 뽑아준 선량들의 수준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 한때 국정의 일익을 담당했던 관료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등은 청문회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따라서 청문회를 없애기보다는 제도를 보강하는 것이 정도(正道)일 것이다. 그 일은 이번 청문회에서 「스타」의 자리를 증인에게 내주고 증인의 「모른다」는 말 한마디에 쉽게 두손을 들어버린, 그래서 망신을 당한 정치인들의 몫이다. ▼제도적 보완 급선무▼ 청문회에 일정수준의 수사권과 정보접근권을 주는 방안, 청문회 증언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해 주는 일, 청문회기간을 늘려 광범위한 증거조사를 가능케 하는 것, 특위위원에게 한시적으로 충분한 인원과 경비를 지원하는 문제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소 「산같지도 않은 산」이 생기지 않도록 감시하고 3년후 총선 때까지도 이번 청문회가 준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유권자의 각오일 것이다. 심규선<정치부차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