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노마필드 지음/「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 입력 1997년 4월 15일 09시 32분


<노마필드 지음/창작과 비평사 펴냄> 노마 필드(Norma Field)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를 읽으며 필자는 개인과 사회와 역사를 하나로 관통해 나가는 특이한 인문학적 시각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혼혈아로서 일본에서 성장하며 겪은 저자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저자 자신의 체험과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펼쳐지는 세 사람의 평범한 개인을 통해 일본인과 일본사회의 본질적 모습을 날카롭게 포착해 내는 이 책은 필자가 보기에 일본에 대해 쓴 책으로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후 가장 주목해야할 책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과 태평양전쟁 중의 숱한 죽음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경제생활을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삶 속의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기 위해서 쓴 책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책에서 평범한 세 사람의 개인―오키나와의 슈퍼마켓 주인과 야마구치의 평범한 가정주부와 나가사키의 시장―을 등장시켜 그들의 일상생활과 이들을 통해 일본 속의 또 다른 일본인 오키나와를, 평화헌법의 전제적 성격을, 현재도 살아 있는 천황제 파시즘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바로 이러한 삶의 세목들을 통해 이들이 일본특유의 문화 속에서 얼마나 힘겹게 아픈 기억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지를, 또한 현란한 소비생활의 유혹 속에서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뛰어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파헤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를 대비해서 생각하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위』로 쓰여진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일상적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생활 보고서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개인의 삶에 대한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어떤 역사 책보다 생생하게 현재 속에 살아 있는 역사를 깨우쳐 주는 책이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일본은 있다, 없다」는 식의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논리가 우리사회를 횡횡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아마도 이런 논리가 제멋대로 판치는 한 우리는 그같은 정서의 사회화를 통해 식민지지배의 영원한 희생자로, 어디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는 사나운 상처만 드러내는 민족으로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노마 필드의 이 책을 통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중 하나는 바로 이 점이다. 홍정선(인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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