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비자 이젠 면제할 때 됐다

  • 입력 1997년 3월 30일 20시 03분


최근 서울을 방문한 깅리치 미국 하원의장은 한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비자면제 법안을 가까운 시일 안에 통과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한국인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비자규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고 보면 그의 말에 기대를 건다. 작년에도 미의회내부에서 그같은 입법움직임이 있었지만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하원에 같은 내용의 법안이 동시에 제출되는 등 미의회내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어 지켜볼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미의회에 제출된 법안 내용이 아주 인색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비자면제 대상자가 공인된 여행사의 단체관광객이어야 하고 그 여행사는 사후 모든 관광객들이 귀국한 사실을 확인해 미국무부에 통보해야 한다. 만일 이를 어기거나 미(未)귀국자가 있을 때는 미 국무부에 미리 예치한 20만달러에서 벌금을 떼이게 된다. 비자 유효기간도 15일간이고 법 시행도 3년간 시험기간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 미의회가 이같이 극히 제한적인 법이나마 마련하려는 이유는 캐나다로 쏠리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붙잡자는데 있다. 그를 위해 아주 좁은 「비자면제의 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수는 95년보다 27.6% 늘었지만 캐나다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수는 44.7%나 증가했다. 그간의 사정을 보면 미의회의 입법동기나 내용을 놓고 왈가왈부할 입장은 못된다. 문제는 우리의 비자면제 요구를 아예 외면하고 있는 미행정부의 온당치 못한 태도다. 미행정부의 주장은 비자면제국으로 지정되려면 비(非)이민비자신청자에 대한 비자거부율이 2년간 평균 2%이하여야 하나 한국은 그 비율이 5∼6%에 이르러 비자면제국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 대한 비자거부 여부를 판단하는 곳은 주한 미국대사관이다. 그 비율이 그처럼 높다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특히 행정인원이 적은 것으로 소문나 있는 지금의 주한 미국대사관 인원으로 엄청난 수의 비자를 처리하려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고 판정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은 유럽 어느 나라의 경우 그 비율이 2%가 넘는데도 편파적으로 비자면제조치를 취해 준 전례가 있다. 미행정부가 한국인들에 대해 계속 인색한 비자발급 정책을 고수한다면 쌓이는 것은 두 나라 국민들간의 불신뿐이다. 서로간에 신뢰가 없으면 우호관계에 금이 갈 수도 있다. 韓美(한미)간의 특별한 관계나 한국의 위상을 보더라도 미국은 이제 대한(對韓)비자정책을 재검토, 개선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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