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日 아쿠타가와賞 수상 유미리씨

  • 입력 1997년 3월 21일 08시 14분


《柳美里(유미리). 올해 스물아홉의 재일동포 처녀 작가. 『「귀국」하면 연락을 달라는 팩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한국에 귀국하는 건지 일본에 귀국하는 건지 혼돈되었습니다. 재일동포란 (고국을 찾아) 방황하는 나그네라는 느낌입니다』 지난 1월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고 꽤나 유명해졌다. 일본에서 태어나 불행했던 청소년기를 딛고 작가로 인정받았지만 우익의 테러위협을 받는 「떠돌이」, 한국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지만 모국어(한글)를 잃은 작가 유미리. 그녀의 농반진반의 「소회」가 아릿하게 와닿는다. 그녀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간동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분홍무늬가 있는 검은색 투피스 차림의 유씨는 깨끗하고 말쑥한 표정으로 자리에 나와 처음에는 긴장한듯 무표정이었으나 차츰 여유를 가지며 손으로 제스처를 쓰기도 하고 웃음을 머금기도 했다.》 [김순덕·권기태기자] 유씨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은 재일동포로서는 51년 李恢成(이회성), 88년 李良枝(이양지·작고)씨에 이어 세번째다. 이번 수상에 따른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 「유미리신드롬」이라 불려▼ 그녀는 『이회성 이양지씨의 수상은 아쿠타가와상의 성가가 높던 시절이었다』고 겸양해 한다. 이에 대해 호시노 도모나리(일본에서 유씨의 책을 낸 講談社소속)의 배경설명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아쿠타가와상의 일본내 지위는 계속 「지반침하」되는 상황이었으나 이번에 특이한 경력을 갖추고 있는 유미리씨와 쓰지 히토나리(음악가)의 공동 수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쿠타가와상이 되살아나는 징조라는 설명이다. 다시 유씨의 대답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 수상작 「가족 시네마」는 순수문학으로서는 일본 독서계에서 드물게 보는 수준인 23만5천여부의 판매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저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지요. 가족을 주제로 삼은 것이 높은 평가를 받게 한 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녀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났다. 68년 일본 도쿄 인근의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빠찡꼬에 빠진 아버지,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 사이에서 남녀 동생이 각각 흩어져 살아야 하는 얼룩진 성장기를 겪었다. 수없는 자살기도, 학교에서 당한 심한 이지메(집단 따돌림), 퇴학 등 아픈 경험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작가이면서도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일어선 「절망속의 꽃」같은 이미지로 더 많이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여자로서 감추고 싶을 법한 과거를 낱낱이 드러낸 데대해 유씨는 『그것이 나의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하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만일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그것을 감추고 있다면 언제까지나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불우했던 유년시절을 정면으로 맞서서 터뜨리고 써대지 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나의 어두운 과거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만큼 나와 내 작품에 대한 관심도 크다는 뜻이라고 여깁니다』 그는『사실 일본에서나만큼 작가 개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작가도 없다』며 「유미리 피버(열기)」「유미리 신드롬」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수줍은듯 웃으며 들려주었다. 그처럼 엄청난 불행속에서 자랐다면 우리나라 TV아침 멜로드라마 각본대로 「타락한 여자」가 되는 것이 정석이다. 『어떻게 타락하는 대신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웃었다. 『내가 타락하지 않은 것 같아 보여요? 의외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남들이 나쁘게 보는 일도 많이 하고 있다고요』 그녀는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가혹한 작업이기 때문에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해야만 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는 남들이 쓰지 못했던 적나라한 부분까지 남김없이 드러낸 섹스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그의 작품의 영원한 테마는 가족이라 해야 옳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가족 시네마」와 92년 기시다(岸田)희곡상을 받고 지금 동아일보사 주최로 정동극장에서 공연중인 「물고기의 축제」에는 해체된 가족을 복원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나온다. 가족이란 작은 이야기 같지만 사회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고 21세기 들어 설사 가족이 해체된다 하더라도 「구심점을 잃은 우주」를 상징하기 위해서도 역시 가족의 의미에 파고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녀의 작품속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죽음」의 의미를 물어본다. 『오래 전에는 할아버지나 유아들이 집에서 숨져갔습니다. 그러나 요즘 「죽음」을 접하는 것은 병원을 통해, 의사의 「돌아가셨습니다」라는 통고를 통해서가 보통이지요.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면 삶도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작품 속에 죽음을 다루고 싶습니다』 ▼ 두번 자살 시도 모두 실패 ▼ 그녀는 『중학교 때 자살을 시도하고 난 후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송구스런 마음이었다』며 『나는 어려서 가족도 잃고, 학력도 중졸밖에 되지 않아(실제로는 요코하마 공립고등학교 1학년 때 퇴학 당했다) 「내겐 아무 것도 없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 단 하나 가진 게 있다면 내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뿐이죠. 남보다 두배는 강한 이 욕구가 내가 사는 원동력이며 내가 글쓰기에 매달리는데 큰 도움을 주는 힘이에요』 그녀는 『현실 세계는 살만한 곳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며 『그러나 작품을 쓰기에 겨우 살아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그 「허구」를 통해 살고 있다』고 토로한다. 연극도 결국 유씨가 만들어내는 허구의 세계다. 그의 연극은 요란한 볼거리가 없는 대신 내면의 치열한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 『일본에서는 80년대 이후 「웃기지 않으면 연극이 아닌 것」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내 연극에 대한 반응도 뜨겁지 않다』고 고백한 그녀는 『「이쪽」(한국)은 남북이 대치하는 극적 상황이 있고 사람들도 적극적 정열적이어서 내 연극에 대한 반응도 훨씬 뜨거운 것 같다』고 반가운 듯이 말했다. ▼ 평생 내 정체성 모색할 것 ▼ 한국을 「이쪽」, 일본을 「일본」이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국적문제를 비롯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제게는 모든 작가 철학자 평론가들은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지점에서 「쓰기 시작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선뜻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평생 그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세상에서 사라져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조부모와 부모는 일본으로 건너온 이유에 대해 잘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편은 한국의 뿌리를 찾아가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일본에서의 삶은 어떨까. 그녀는 『무언가 계획을 해놓고 사는 성격이 아니다』며 『다다미를 10장 정도 깐 원룸형의 부엌 딸린 좁은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된 피자로 세끼를 때울 때도 있어 생활을 버려버린 감이 있다』며 『물질적 욕심은 없지만 남에게 선물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날 오후 3시와 4시 서울 교보문고와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자 사인회 및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오는 23일 오후 1시에는 서울 덕수궁 뒤 정동극장에서 본사가 주최하는 연극 「물고기의 축제」를 관람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 24일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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