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거듭된 시련 딛고선「오뚜기사업가」손완일씨

입력 1997-03-19 08:06수정 2009-09-2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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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예기자] 주식회사 두발리에 대표 손완일씨는 이제 38세다. 그러나 그의 반생은 드라마다. 잘 나가던 이 젊은 사업가는 지난 89년 하루아침에 통장잔고 30만원의 빈털터리가 됐다. 그러나 올 2월에는 서울 동대문에 2백30억원 상당의 15층짜리 빌딩을 짓고 두발리에라는 신발 공동브랜드 사업을 시작했다. 밀양 손씨 종가 종손으로 태어나 위로 누이만 일곱을 둔 그는 「금지옥엽」이었다. 마마보이가 될 것을 우려한 아버지는 그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닭 20마리를 사주며 스스로 벌어 학비와 용돈을 대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돈버는 재미를 배웠고 종중재산을 관리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이재(理財)에 대한 눈도 키웠다. 77년에는 명문대 의대에 입학했다. 본과 4학년을 마칠 즈음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운동권에 연루돼 더이상 발을 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선택한 일종의 도피였다. 하지만 입대 6개월만에 군대에서 잘렸다. 전후사정을 모르는 아버지가 「귀한」 아들 다칠까봐 손을 썼고 평소 약간 말을 더듬던 것이 「언어장애」라는 병명으로 발전해 제대를 당한 것. 그러나 제대 2개월만에 우려하던 시국 사건으로 교도소에 끌려가 1년간 옥살이를 했다. 학교로 돌아갈 수도, 취직을 할 수도 없었다. 사업 외에는 길이 없었다. 금융제도 활용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85년 벤처기업으로 은행의 창업자금 지원을 받아 전북전주에 컴퓨터 자수공장을 차렸다. 공장문을 연지 한달만에 2년치 일거리가 밀려 들었고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듯」 돈을 쓸어 모았다. 그러던 89년 장군진급을 앞둔 손위 처남의 부인이 집에 놀러 왔다 보관중인 당좌수표 20장짜리 1권을 말도 없이 가져가 버렸고 이후 6개월간은 모은 재산 다 팔아 부도 막는 것이 일이었다. 부인은 마음고생끝에 두 아이를 남겨 놓고 집을 나가버렸다.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밑천은 갓 결혼한 동생이 아파트를 팔고 월세로 나앉으면서 마련해 주었다. 마약과 도둑질빼고는 돈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했다. 클레임에 걸려 창고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원가이하로 사들고 동남아시아와 서부 아프리카의 오지를 누볐다. 원목을 수입하러 간 인도네시아의 정글과 우즈베크의 면화밭에서 길을 잃고 며칠을 헤매며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러시아군함을 고철로 수입해 두세배의 이윤을 남기기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국내경매와 국제입찰에 대한 정보지를 보며 돈버는 온갖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기를 8년. 그는 일단 신발사업에 닻을 내렸다. 15층 빌딩에 1백10개 신발 제조업체를 입주시켜 두발리에라는 공동브랜드로 신발을 팔고 본사는 신발의 품질관리와 홍보 및 전국적인 애프터서비스(AS)를 맡을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귀금속브랜드 「보이스 오브 골드」나 일본의 몬조 안경테, 미국의 선키스트 주스처럼 세계적인 공동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루도 이를 악물고 지내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인생마침표는 제대로 찍어야지요. 지켜봐 주십시오. 제 사업이 어떻게 커나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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