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03)

  • 입력 1997년 2월 18일 20시 11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93〉 수다쟁이 이발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다섯번째 형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형의 공상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백 디르함어치의 유리 그릇들 앞에 웅크리고 앉은 형은 계속해서 혼자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내시를 시켜 오백 디나르가 든 자루를 가져 오게 하여 수모 여자들에게 행핫돈으로 나누어 주고 신부방으로 나를 안내토록 하리라. 신부와 단 둘이 남게 되어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벽쪽으로 돌아누운 채, 흥, 네까짓 것, 하는 식으로 업신여겨 주리라. 그렇게 하면 누구나 내가 긍지가 높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테지. 그렇게 되면 여자의 어머니가 들어와 내 머리와 손에 입을 맞추며 말하겠지. 여보세요 나리, 당신의 시녀를 보아 주십시오. 당신의 사랑을 몹시 바라고 있답니다. 제발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으리. 그렇게 되면 신부의 어머니는 급기야 내 발에다 입을 맞추며 말할 테지. 여보세요, 나리. 제 딸은 예쁜 계집이랍니다. 게다가 여태 남자를 모른답니다. 당신이 그렇게 야속하게 구신다면 제 딸년의 가슴은 미어지고 말 것입니다. 제발 딸에게로 가까이 오셔서 말도 걸어주시고 마음도 위로해 주십시오, 하고 말이다. 그리고는 술을 한잔 갖다가 딸에게 주며 지시를 하겠지. 얘야, 이걸 나리께 올려라, 하고 말이다. 그러나 여자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나는 여자를 세워둔 채 금실로 선을 두른 둥근 베개에 팔꿈치를 괴고 귀찮다는 듯이 등을 기댄 채 돌아보지도 않고 거만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여자는 날 임금이나 영웅으로 알 테지. 이윽고 여자는 저, 나리, 제발 당신의 시녀 손에서 잔을 받아주세요. 정말이지 저는 당신의 종이랍니다, 하고 말할 것이고, 그래도 나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으리라. 그러면 여자는, 드시지 않으면 전 어떻게 해요, 하고 말하며 잔을 내 입에다 갖다 댈 테지. 그때 나는 정통으로 팔을 휘두르고, 이런 식으로 냅다 한발로 걷어차 버린단 말야!」 이렇게 소리치며 형은 발끝으로 유리그릇이 든 쟁반을 걷어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릇들은 땅바닥에 쏟아지면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구, 이 일을 어째? 이 바보같은 놈아, 이 모든 게 다 내가 마음이 거만한 탓이야!」 형은 이렇게 소리치며 자신의 얼굴을 때리고 옷을 갈기갈기 찢고 울고불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마침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기도하러 가던 사람들은 그러한 형의 꼴을 보고 더러는 불쌍하게 여겨 쯧쯧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형은 선친에게서 받은 자기 몫의 유산 대부분을 날려버렸습니다. 형은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잃고 만 꼴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으려니까 아름답기 그지없는 젊은 부인 한 사람이 사향 향기를 풍기면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황금 안장을 얹은 당나귀를 타고 두사람의 내시를 거느리고 금요일 기도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는데 깨어진 유리그릇들을 앞에 놓고 울고 있는 형을 보자 진정으로 가엾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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