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보사건 책임있는 당국자 말 삼가라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28분


한보사태와 관련, 책임있는 정책당국자라면 국민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과 영향을 우선 걱정해야 하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마련에 부심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국내금융기관들의 해외신용도가 큰 타격을 받지 않도록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다 했어야 한다. 거액부실채권으로 국내은행들의 신용도가 날로 떨어지는 터에 정책당국자의 한마디 말이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한보부도의 부작용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은행들의 해외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린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한보사태 직후 미국 양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가 국내 관련은행들을 요주의대상으로 지정했다. 그 결과 국내은행들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차입조건도 크게 불리해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제수석의 무책임한 발언이 터져나왔다. 『경영부실로 은행이 망해도 할 수 없다. 한은 특융(特融) 등은 있을 수 없다』는 원론적인 얘기지만 국내외 파문은 엄청났다. 일본은행들이 국내은행 현지 지점에 자금지원을 중단하고 일본중앙은행이 한국은행에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런던 뉴욕 홍콩 등지에서도 한국금융기관과 자금거래를 꺼리고 있다. 해외차입금리는 단기가 0.05∼0.1%포인트, 장기는 0.4%포인트나 뛰었다. 당국자의 무책임한 한마디 말의 파장이었다. 한국은행총재가 긴급진화(鎭火)에 나서 국내은행 해외지점의 청산능력에 대한 책임을 한국은행이 지겠다고 밝혔다. 중앙은행총재의 이같은 이례적 발언은 국제금융기관의 국내은행 해외지점에 대한 자금지원중단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차입조건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국내금융기관의 해외신용추락은 외자조달비용의 증가에 머물지 않는다. 대외신용 하락의 장기화는 자본유출, 외환보유고 고갈, 국제환투기마저 불러 걷잡을 수 없는 외화불안사태로 번질 수 있다. 금융신용은 곧 국가공신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경제수석은 한보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충격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중대하고 민감한 시기에는 말과 행동에 특히 신중했어야 한다. 경제수석이 모든 경제정책을 멋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한은 특융의 문제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 및 한국은행이 판단할 일이지 경제수석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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