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83)

  • 입력 1997년 1월 27일 20시 35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73〉 수다쟁이 이발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맏형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녀의 말을 들은 형은 기쁨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말고요. 부디 말씀을 잘 전해주십시오. 당신의 종은 무엇이든 분부대로 하겠으니 어떤 일이든 시켜만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형은 온갖 정성으로 속곳을 말라 열심으로 지었습니다. 그러고 있으려니까 문제의 그 주인집 여자가 창가에 나타나서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를 숙여 눈을 내리까는가 하면 형쪽으로 방긋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형은 마음 속으로 이제 머지않아 저 여자는 내 것이 될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형이 속곳 두 벌을 다 지을 때까지 여자는 창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을 다 마치는 것을 보고서야 여자는 사라지더니 하녀를 보내었습니다. 형이 물건을 내어주자 하녀는 돌아갔습니다. 그날 밤 형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몸을 뒤척거리다가 날이 새자 다시 가게로 나갔습니다. 가게에 앉아 여자로부터 무슨 전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이윽고 그 하녀가 왔습니다. 너무나 반가워 형은 벌떡 일어나 하녀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하녀는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인나리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이 뜻밖의 말을 들은 형은 겁이 나서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아씨」가 아닌 「주인나리」가 부른다고 하니 무엇인가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겁먹고 있는 형을 보고 하녀는 말했습니다. 「염려할 건 없어요. 아주 좋은 일이 있을 테니까요. 아씨는 당신을 주인나리께 소개하겠다고 하셨답니다」 그제서야 형은 안심이 되어 하녀를 따라갔습니다. 형은 여자의 남편인 집 주인 앞에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집 주인도 답례를 하고 큼직한 아마 한 필을 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이 천으로 셔츠를 만들어 주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형은 이렇게 대답하고 물러나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곧 일에 착수하여 점심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저녁 때까지 셔츠 스무 벌을 지었습니다. 셔츠를 다 만들어 들고 가자 주인은 삯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이십 디르함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큰 소리로 하녀에게 말했습니다. 「이십 디르함을 가져오라」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형이 사모하는 그 여자가 나타나더니 형에게 눈짓으로 말했습니다. 「나리한테는 한 푼도 받으면 안돼요」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자 형은 주인한테 말했습니다. 「원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리한테서 삯을 받다니요. 저는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형은 연장들을 챙겨들고 가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위세좋게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때 형은 동전 한 닢이 아쉬운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런 형에게 이십 디르함은 더없이 요긴한 돈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글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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