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1)

  • 입력 1997년 1월 22일 20시 51분


짧은 봄에 온 남자〈3〉 『며칠 전 입상자 명단에서 서영이를 봤을 때 내가 그동안 너무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았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옆에 와 나란히 선 채 아저씨는 창밖을 보고 말했다. 그녀는 식은 커피로 입술을 적셨다. 왠지 입안이 마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저씨가 보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저씨는 알 것이다. 『나는 서영양을 늘 어리게만 생각했어요. 서영양이 처음 내게 편지를 썼을 때처럼…』 『이제 대학 삼년인 걸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나 이제 다 크고, 다 자랐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키도 보통 키의 아저씨보다 조금 더 작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저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콧날이 참 우뚝하다는 생각이 든다. 『늦게까지 눈이 오는군요』 아저씨도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저씨의 옆 얼굴에서 우뚝한 콧날을 바라보았듯 아저씨도 그녀의 옆얼굴에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머리결과 반듯한 콧날, 엄마가 늘 말하듯 귀엽고도 동그란 귓볼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러나 조금은 가늘고 긴 흰 손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콧날과 귓볼에는 몰라도 아저씨의 눈길이 가슴 앞쪽으로 상패와 가방을 모아들고 있는 손에 와 머물고 있는 걸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부끄러운 느낌만 아니라면 아저씨의 편지를 처음 받던 날도 눈이 내렸다고 말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요?』 예, 하고 대답했지만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저씨는 아래로 내려가자고 했다. 지하에 커피숍이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그렇게 됐어요』 아저씨는 다시 편지 얘기를 했다. 『복직하고 나선 이제 내가 신문사로 다시 들어왔다는 걸 알겠구나, 하고 또 쓰지 않았고』 그렇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왜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녀는 두 손으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아저씨가 다시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녀는 잔을 쥐고 있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삼년만인가요?』 아저씨가 물었다. <글 : 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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