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77)

  • 입력 1997년 1월 21일 20시 14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67〉 다리를 저는 아름다운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나의 하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법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의 주인을 죽이다니, 대체 그가 누구요? 그리고 그 주인이란 분이 내게 무슨 일을 했단 말이오? 이것은 내집이니까 여러분들 마음대로 들어와도 좋소. 들어와서 확인해보시오. 당신들의 주인이 대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죽였다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이렇게 되자 이발사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때리지 않았느냔 말요. 나는 나리의 비명소리를 들었단 말요」 그러자 법관이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 주인을 때렸다고? 그렇다면 그 주인은 대체 뭘 하고 있었지? 아니, 그보다도 왜 내 집에 왔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갔지?」 법관은 무엇인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눈치 없는 이발사 놈은 마구 소리쳤습니다. 「쓸데없는 능청을 떨 생각은 말아요.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당신의 딸이 우리 나리한테 반하고 우리 나리 또한 당신 딸한테 반했단 말요. 그래서 나리는 이 집에 숨어들었다가 들킨 거지요. 당신은 하인 놈들을 시켜 우리 나리를 사정 없이 때렸고」 그제서야 법관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이 미친 놈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악다구니를 했습니다. 「알라께 맹세코 이 사건을 심판할 수 있는 건 교주님뿐입니다. 그게 싫으면 우리가 나리님을 데리고 갈테니 어서 내놓으시오. 힘으로 밀고 들어가 나리님을 뺏어내 당신한테 창피를 주기 전에 말이오」 그러자 법관은 수염을 푸들푸들 떨고 혀가 굳어져서 우물거리며 말했습니다. 「당신 말이 정말이라면 이리 들어와서 데리고 가시오」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모르는 이 이발사 놈은 너무나 보무당당하게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도망갈 길이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지만 이층에는 커다란 궤짝 외엔 숨을 곳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궤짝 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고는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이발사는 온 집 안을 휘젓고 다니며 나를 찾던 끝에 기어이 내가 숨어 있는 궤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 내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이발사는 궤짝을 번쩍 들어 머리에 이고는 쏜살같이 달아났습니다. 정말이지 나는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이발사에게 붙잡히는 날에는 죽어도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발사에게 붙잡히느니 차라리 법관한테 붙잡혀 맞아죽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궤짝 뚜껑을 열고는 땅 위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 바람에 나의 한쪽 다리는 부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서 톡톡히 창피를 당할 판이었습니다』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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