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동아신춘문예/시나리오당선작]양선희 『집으로…』

  • 입력 1997년 1월 2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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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거 리 ▼ 소설가인 우연희는 전철을 타고 서울을 순환하다 대림역에서 내린다. 창문을 통해 도시의 황폐한 풍경을 내다보던 우연희는 자신의 시야로 신기루처럼 떠오르는 나비연에 마음을 빼앗긴다. 날으는 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고층 오피스텔을 발견한 우연희는 그 곳을 향해 가며 습관처럼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에서 몇 소절, 저 노래에서 몇 소절 가져 온 노래말을 흥얼대며 걷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없는 쓸쓸함을 노래로 극복하려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피스텔의 관리소장이 보여주는 방을 본 우연희는 그 방의 창문이 맞은 편 오피스텔의 다른 방 창문과 정면으로 통해 있다는 점 때문에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채 오피스텔을 나와 걷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나비연을 발견하고 그걸 줍는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연 날리기와 독서로 소일하는 한국화가 고승천은 불면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책 대여점에서 우연희의 장편소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를 빌려와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깊은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웃음」이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고독하게 사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오연정에게 순수한 애정을 느낀 고승천은 눈 앞에 펼쳐지는 오연정의 환상에 밤 내내 마음을 빼앗긴다. 우연희가 세들어 사는 방의 옆방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요란한 교성이 들린다. 그 소리는 우연희의 어둡고 아픈 기억을 예리하게 건든다. 대낮에 건장한 세 명의 청년들에게 납치되어 승합차 안에서 윤간을 당한 사건으로 인해 소중한 많은 것을 상실한 우연희. 그 사건 이후로 그녀는 한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혀야만 잠을 잘 수 있는 것이다. 교성을 고통스럽게 견딜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환멸을 떨치기 위해 우연희는 새벽까지 새 소설 「사막의 길」을 쓰다 아침에야 잠이 든다.한편 오연정을 향한 애정의 강렬함으로 인해 고승천은 그녀가 허구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소설 속에 나오는 오연정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조각가인 서진으로부터 오연정은 지상에 없는 인물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몇 번 더 계속된 서진과의 통화를 통해서야 고승천은 우연희와 서진이 친구 관계이며, 오연정은 우연희가 창조해낸 인물이라는 것을 믿게 된다. 그러나 오연정에게로 향했던 고승천의 마음은 고스란히 우연희에게로 옮겨진다. 소설 속에서 오연정이 즐겨 찾던 장소들을 헤매며 우연희와의 만남을 기대했던 고승천은 비오는 어느 날 인사동길에서 우연희에게 그녀의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찾아주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실체를 모른 채 헤어진다. 오피스텔로 이사를 해 소설을 쓰며 새로운 나날을 보내던 우연희는 고승천이 보내온 두 마리의 거북과 「요즘은 자주 길을 잃는다. 이러다가 길에서 생을 다 허비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관리소장에게서 건네 받는다. 서진과 의논하여 거북에게 「해」와 「달」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우연희는 글을 쓰는 틈틈이 거북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그러면서 우연희는 어둠 뿐이었던 자기 삶의 내부가 아주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서진이 잠시 서울을 비우자 갑자기 마음이 텅 빈 것을 느낀 우연희는 서진의 자동응답전화기에 시를 낭송한 뒤 자신의 가슴에 빛이 가득하던 시절이 그립다는 넋두리를 녹음한다. 그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훔쳐보는 건너편 오피스텔 김씨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던 우연희는 옥상에 널어 뒀던 자신의 속옷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마음의 경계를 소홀히했다는 인식을 한다.자신의 속옷 사이즈를 대면서 음흉하게 접근해 오는 김씨의 존재로 인해 공포에 휩싸인 우연희는 서진이 서울을 떠나며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구조 요청을 하라며 남긴 전화번호의 주인이 고승천인 줄은 알지 못한 채 전화를 건다. 우연희의 전화를 받고 꿈이 현실로 바뀐 것에 기뻐하며 고승천은 우연희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자신의 내면 풍경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어둠이 물러갈 때까지 생의 여러 국면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존재를 섬세하게 읽는다. 다음 날 복덕방을 전전하며 새로 이사할 집을 구하던 우연희는 사랑이 있는 공간이면 그곳이 어디든 다 집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거주할 집의 존재 여부와, 자기 스스로도 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명상한다. 우연희는 자신이 새로 구한 집이 고승천이 사는 집의 옆 건물 옥탑이라는 것을 모른 채 서둘러 이사를 한 뒤,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여행에서 돌아온 서진을 만나 그녀로부터 「연이 있는 풍경」이라는 표제가 붙은 고승천의 화집을 건네받고 그에 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는 고승천의 존재에 대해 조금씩 마음의 눈을 뜨게 된다. 그 이후로 우연희는 고승천의 전화를 반갑게 받으며 집필 중인 소설을 그에게 읽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63빌딩 앞 택시 정류장에서 만나 서로의 실체를 확인한 뒤, 63빌딩 옥상에서 새벽이 올 무렵까지 연을 날리며 서로의 소원을 빈다. 집을 잘못 찾아 온 서진에 의해 비로소 두 사람은 서로가 이웃이 되었다는 걸 확인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고승천은 우연희가 교보문고에서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러 간 사이에 우연희 집의 옥상을 페인트로 채색해 동화의 나라로 만든다. 집으로 돌아온 우연희는 「어둠이 가득한 그대 영혼의 집을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웃음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고승천의 편지를 읽고 놀이터에서 찾은 그와 동행해 「낚시터―我」로 향한다. 바닥에 거울만이 깔려 있는 낚시터에서 자기 존재의 거울을 보게 된 우연희는 고승천과 함께 남산 순환도로를 걷다가 도시를 탈출하는 고승천의 친구인 장원하 일행에 합류한다. 밤 바다 앞에서 나신으로 춤을 추던 장원하 일행이 다 떠난 아침,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우연희는 「죽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을 죽음으로 인해 잃어야 한다는 게 아픈 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독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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