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55)

  • 입력 1996년 12월 27일 21시 29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45〉 오른손이 없는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처녀와 나 사이의 그 억제된 정사가 끝났을 때 처녀는 내 가슴패기에 코를 박은 채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날밤 그녀와 나는 몇 차례 더 그런 식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넓적다리와 넓적다리를 깍지낀 채 꼭 그러안고 잠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몸이 온통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 나는 땀을 흘려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일어나보니 내 곁에 누운 처녀의 몸과 내 몸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란 나는 처녀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처녀의 목이 베개에서 굴러떨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전능하신 수호자여, 제발 가호를 내리소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처녀의 목은 잘려 있었고 그녀가 흘린 피로 방안은 온통 피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첫번째 애인을 찾아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여 처녀를 죽이고 달아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습니다. 「영광되고 위대하신 신 알라 이외에 주권 없고 권력 없도다!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담?」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나는 마당으로 나가 마당 한가운데 대리석 석판들을 걷어내고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리고는 살해당한 처녀의 시체에 옷을 입히고 보석과 황금 패물들을 본래대로 모두 단 채 묻었습니다. 흙을 덮고 바닥을 평평하게 고른 뒤 그 위에다 대리석 석판을 본래대로 끼워넣었습니다. 그 일이 끝난 뒤에는 피로 범벅이 된 방을 씻어냈습니다.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방을 씻어낸 뒤 나는 전신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피가 묻은 나의 헌 옷은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나는 집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집주인에게 나는 일년치 집세를 미리 주면서 말했습니다. 「카이로의 숙부님들을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숙부님들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나는 그 길로 이집트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길고 긴 여행 끝에 나는 마침내 카이로에 도착했고, 그리고 숙부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내가 온 것을 몹시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찾아갔을 때 숙부님들은 가지고 왔던 물건들을 벌써 다 팔아버린 때였기 때문에 장사를 이미 끝낸 터였습니다. 「왜 왔어?」 숙부님들이 물었습니다. 「숙부님들이 보고 싶어서요」 내가 말했습니다. 「암튼 잘 왔다. 우리도 네가 보고싶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카이로 구경이나 실컷 하렴」 숙부님들은 내가 카이로까지 혼자 찾아온 것을 대견해하며 말했습니다』 <글 :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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