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39)

  • 입력 1996년 12월 10일 20시 24분


추락하는 것은 평화롭다〈13〉 나는 애리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연다. 『이제 그 얘기로 나 피곤하게 하는 거 그만둬. 난 결혼 안 해. 혼자 사는 게 편하고, 또 집안에서 달가워하지 않는 결혼은 한 번으로 됐어』 『이선생님 집안에서 언니를 안 좋아한단 말야? 왜, 이혼녀라고?』 이쯤에서 이야기를 끊고 싶었으므로 나는 소파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애리가 다가앉으며 내 옷깃을 붙들어 도로 소파에 앉힌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딱하다는 듯이 말한다. 『저쪽도 홀어머니인데 지금 위암 말기야. 어차피 찾아가서 인사하고 설득하고 그럴 입장 아니야』 『환자한테 충격을 줄 수 없어서 자꾸 결혼을 피한다는 거야? 언니가 그 이유 때문에 결혼을 피한다면 환자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안돼』 『피하는 게 아니고 결혼할 마음이 없는 거라니까』 이 말을 한 다음 나는 스스로에게 은근히 놀란다. 나답지 않게 왜 이처럼 성실하게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애리를 향해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것은 아닐까. 애리가 제멋대로 결론을 내린다. 『언니한테는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안돼. 난 알아. 언니가 이혼하기 전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방학 때 딱 한 번 언니 집에 갔었는데 기억나? 언니는 나를 어린애라고만 생각했겠지만 어린애에게도 세상을 보는 눈은 있어. 언니가 사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막연히 동경했던 언니를 그때부터는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아. 내가 점을 쳐볼까. 언니는 반드시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해. 그러면 무조건 행복하게 살 거야. 당연한 말 같지만 사실 이 점괘가 아무한테나 다 해당되는 건 아니라구』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일어나 내 방으로 간다. 등뒤로 애리가 던지는 한마디가 들려온다. 『언니 단점은 솔직하지 않다는 거야. 잘난 척만 하고…』 방문을 닫기 직전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애리의 마지막 말. 『…자기 마음속은 전혀 모르면서』 방으로 들어온 나는 책상으로 다가간다. 학생들의 시험지를 끌어다가 채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몰두해 버린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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