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37)

  • 입력 1996년 12월 8일 19시 56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27〉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오, 정말이지 그렇게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자가 세상에 달리 있을까요? 눈부시게 화려한 옷을 입고, 값비싼 패물들을 걸치고, 멋진 암탕나귀를 타고 앞뒤로 두 명의 검둥이 노예들의 호위를 받으며 오고 있는 그녀는 더없이 고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교역시장 어귀에서 당나귀를 내리더니 시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를 호위하는 내시 중 한 사람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주인님, 시장 잡배들과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불길이라도 일으키는 날이면 저희는 모두 타죽습니다요」 그런가하면 내시는 여주인이 상점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그 앞을 가로막아 그녀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높은 신분의 여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여자는 가게를 찾고 있었습니다만 그 시간에 문을 연 가게는 저의 가게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여자는 내시를 거느리고 저의 가게로 왔습니다. 「여보세요, 당신의 가게에 좋은 옷감이 있습니까?」 그녀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며 부드럽고 품위 있는 말씨를 일찍이 저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 아씨. 당신의 종은 가난한 상인이라 당신에게 맞는 물건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상인들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신다면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며 여자를 가게 안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여자는 저의 가게 안으로 들어와 제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그녀가 저의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을 때 저의 심장은 고동을 치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베일을 벗었는데 그 얼굴은 정말이지 달과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어여쁜 얼굴을 한번 본 저는 그만 넋을 잃을 듯이 반하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다른 상인들이 하나둘 가게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천 디르함어치나 되는 옷감을 청하는 대로 주선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건 값은 모두 제 앞으로 외상을 달았습니다. 물론 그녀의 주소라도 물어볼 수 있었지만 저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천 디르함을 떼일까봐 그런 걸 묻는다는 것이 그녀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물건들을 내시에게 맡기고 교역시장어귀에서당나귀를타고 돌아갔습니다. 그날밤 저는 여자의 요염한 모습이 떠올라 식사도 할 수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저의 처지, 저의 그 가난이 그때처럼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을 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상인들은 외상값을 달라고 저에게 독촉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일주일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돈도 돈이었지만, 정말이지 저는 그녀를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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