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22)

  • 입력 1996년 11월 24일 01시 43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9〉 나는 오해 속에서 그냥 살아가고 싶다. 기자 정신이 투철한 사회부 기자답게 종태는 이따금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일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열변을 토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가혹한 진실보다는 오해 속에 깃들인 안이함, 제멋대로의 방치가 더 좋다. 지금쯤 종태는 택시 안에 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진실을 모르는 편이 낫다. 나는 거짓말을 아주 잘 하지만 거짓된 말은 싫어한다. 내가 그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소한 거짓된 짓은 아니다. 내가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애리는 등 뒤에 대고 또 한마디 한다. 『언니는 감정을 만들어내지? 그건 내가 이선생님한테 품었던 짝사랑하고 똑같은 거야. 가짜라구. 이제 들러리들은 그만 만나고 좀 자신에게 솔직해봐. 언니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이선생님 한 사람뿐이잖아』 나는 비누거품을 얼굴에 묻히며 애리를 빨리 보내버려야겠다고 생각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틈입자란 역시 번거로운 존재다. 아버지 말씀대로 애리가 사람을 뜯어보고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나를 닮은 점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봐줄 기분이 아니다. 두 손으로 찬물을 떠서 얼굴에 끼얹으며 그런 생각도 한다. 나와 닮았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내가 싫어하는 나의 어떤 점을 닮은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그런 것이 서로 닮은 가족 사이에 애증의 뿌리가 되기도 하겠지. 현석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가족이 된 뒤에도 그를 현실적인 집착 없이 한 인간으로만 대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리는 잔소리가 늘어만 간다.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애리가 우기는 바람에 함께 백화점에 간 날도 애리는 입을 쉬지 않는다. 내게 「생각 없이 물건을 산다」며 쇼핑을 좀 적극적으로 하라고 걸핏하면 핀잔을 준다. 쇼핑을 한 다음 식당에 가서도 애리는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잠깐만요』하면서 세 번이나 돌려보낸 끝에 메뉴를 결정한다. 그리고는 「아무거나」 주문하는 나를 일용할 양식에 대한 경배심이 부족하다고 한참 꾸짖는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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