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12)

  • 입력 1996년 11월 12일 20시 11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2〉 꼽추의 시체를 들쳐 업고 종종걸음으로 길을 가면서 재봉사의 아내는 쉴새없이 외쳤다. 『아, 얘야, 많이 아프니? 하느님께서 널 지켜주시고 계시단다! 마마가 돋친 데는 어디지?』 그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애가 마마에 걸렸구먼』 의사의 집은 쉬 찾아지지가 않았다. 재봉사 내외는 묻고 물어 겨우 유태인 의사 집에 당도하였다. 문을 두드리자 검둥이 노예계집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노예계집은 어린애를 안은 재봉사 내외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재봉사의 아내가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아이를 좀 보아 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사분의 일 디나르짜리 금화를 선생님께 드릴 테니 부디 내려오셔서 중병에 걸린 우리 아이를 좀 보아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노예계집은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재봉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이 꼽추는 여기다 두고 빨리 달아납시다』 그제서야 아내의 계략을 알아챈 재봉사는 시체를 계단 위에까지 안아다 벽에 기대어 세워놓고는 아내와 함께 뺑소니를 쳤다. 한편 노예계집은 유태인 의사에게 가서 말했다. 『중병에 걸린 아이를 안고 온 내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 보이고 처방을 받고 싶다면서 사분의 일 디나르짜리 금화를 주더군요』 유태인 의사는 돈을 보자 희색이 만면하여 일어나더니 허둥지둥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그토록 서둘러 달려나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어둠 속에 세워둔 시체에 부딪치면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시체는 힘없이 쓰러지면서 떼굴떼굴 계단 아래에까지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너무나 놀란 의사는 노예계집을 향하여 등불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노예계집이 등불을 가져오자 의사는 계단을 내려가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난데없는 꼽추 하나가 돌처럼 딱딱하게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유태인 의사는 소리쳤다. 『오, 에스도라스여! 모세여! 아론이여! 여호수아여! 십계여! 의사를 찾아온 병자를 계단에 굴러떨어뜨려 죽이고 말다니! 내가 죽인 이 사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에스도라스의 당나귀 다리에맹세코,이일을어쩌면좋단 말이냐?』 너무나 당황한 의사는 시체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부주의로 병자를 죽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의사 마누라는 말했다. 『어쩌자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요? 내일 아침까지 시체를 집안에 두었다가는 우리들의 목숨은 없어질 거예요. 자, 지붕으로 운반해다가 이웃 이슬람교도 집에다가 내던져 버립시다. 하룻밤만 거기다 버려두면 개들이 몰려와 깨끗이 처치해줄 거예요』 <글 : 하 일 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