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11)

  • 입력 1996년 11월 11일 20시 23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18〉 애리가 도착한 것은 바로 다음 주일이다. 좀 서먹서먹하리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애리는 아파트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적응해버린 모양이었다. 『언니는 집을 너무 답답하게 쓰고 있구나. 냉장고하고 소파 위치만 좀 바꾸면 훨씬 트여 보이겠는데?』 하는 첫마디만 들어도 집의 구조나 사용법은 물론이고 문제점과 개선방향까지도 파악해버린 거였다. 『난 트인 거 안 좋아해. 노출돼 있으면 불안해』 애리의 항공가방을 거실로 끌어올리며 이렇게 대답하자 애리는 거침없이 말한다. 『그럼 어떡하지? 난 폐쇄공포증이 있는데?』 마치 신혼집을 얻은 신부처럼 들뜬 얼굴로 베란다에 나가보더니 애리는 또 개선책을 내놓는다., 『높아서 전망은 괜찮네. 빨랫대를 안쪽으로 옮겨놓고 여기에는 화분을 좀 많이 갖다놓아야겠어. 어떻게 화분이 한 개도 없어?』 나는 뭘 돌보는 게 도무지 귀찮아서 관상용 물고기나 새 따위는 물론이고 흔한 선인장 화분 하나 두지 않고 살았다. 게으른 탓일 것이다. 그러나 애리는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혹시 잘못해서 죽어버릴까봐 안 키우는 거지? 언니는 옛날부터 마음이 약했어. 우리 집 강아지 죽었을 때도 언니가 제일 슬퍼했잖아』 내가 슬퍼했다고? 애리한테 나 말고 다감한 성격을 가진 다른 언니가 있었던 건가? 나는 의아한 눈으로 애리를 쳐다본다. 『울진 않았지만 아무튼 굉장히 슬퍼했다는 기억은 나. 그리고 내가 여덟살 때인가? 마당에서 놀다가 못을 밟았잖아. 그때도 자고 있는데 언니가 공부하다 말고 와서 내 양말을 벗기고는 한참동안 얼굴을 찡그리고 들여다보았어. 자는 체 하면서 다 봤지』 『나는 생각도 안 나는데, 여덟살 때 일을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니?』 『왜 기억을 못해. 언니 몰랐어? 내가 언니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천진하기까지 한 애리의 표정을 쳐다보며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애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좋아한다는 걸까. 여덟살짜리가 보는 열아홉살은 멋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무살 이후에는 가까이 지낸 적이 없으니 그애의 오해는 굳어져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애의 오해를 깨줄 수 있는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현석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일이다. <글 :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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