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2)

  • 입력 1996년 11월 1일 20시 29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9〉 현석의 팔이 내 어깨 위에 올려진다. 나는 입에서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막으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있다. 서로의 몸이 닿자 그것들은 오랜 친근을 확인하듯 자연스럽게 밀착된다. 그리고 몸의 중심부분을 강하게 교란시키는 것이다. 현석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길을 건너 유료주차장에 들어가서 주차비를 낸 다음 차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의 시간 동안 우리 몸은 빠른 속도로 친밀감을 회복한다. 정신에 비해 몸은 단순 솔직하다. 고맙지만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몸과 정신과 말. 그 중에서 가장 솔직하지 못하고 교활하면서 천박한 것은 말이다. 그렇기에 현석과 나는 그 순간 완강히 침묵한 채 차 안의 어둠 속에서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던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성적 욕망이란 친근감보다는 훨씬 복잡한 감정이다. 아직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또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날로 당장 몸을 합하는 일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현석과 나는 둘 다 쓸데없는 것을 지니고 있었는데, 바로 지나친 자의식이다. 저녁을 먹은 뒤 함께 내 아파트로 들어선 것만으로도 우리 사이에는 어떤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던 셈이다. 그것을 의식했기 때문에 현석의 태도는 더욱 어색해진다. 현관으로 한 발을 들여놓고 현석은 몇 번 눈을 깜박인다. 『시계를 옮겨 달았어요?』 『뻐꾸기하고 마주보기 싫어서요』 『커튼이…』 『날씨가 추워져서 두꺼운 천으로 바꿨는데, 좀 어둡죠?』 나는 우리가 헤어지던 날처럼 커피를 끓인다. 커피를 따라 오자 현석은 『커피는 여전히 헤이즐넛이네요』하며 머그잔으로 손을 뻗는다. 내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캔맥주를 가져다가 마개를 따는 것을 보고 그는 또 『여전히 하이네켄…』이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픽 웃지 않을 수 없다. 현석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내 어깨를 끌어당길 때도, 입술이 닿았을 때도 나는 어색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제기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어려워하면서까지 서로를 안으려고 하는 걸까. 대체 섹스 따위가 뭘 증명해준다고. <글 : 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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