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91)

  • 입력 1996년 10월 21일 21시 00분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기〈39〉 삶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살아가는 일은 간단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진지함 과 심각함 속에는 반드시 우스꽝스러운 점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굳이 이혼을 할 마음은 없었다. 다른 남자를 만나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 인생 전반에 대해 별다른 기대가 없는 탓이기도 했다. 이혼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상현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에 떼밀리 듯이 이혼을 했다. 어이없는 우연이 우리를 좁은 방안에 가두었고, 거기에 갇히자 우리는 갑자기 최면에 걸린 듯이 서로에게 적의를 품었다. 방밖으로 나온 뒤 우리의 적의가 상황에 의한 사소한 감정일 뿐임을 깨달았지만 이미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 다. 그런 어이없고 사소한 일이 삶을 뒤흔들 때 나는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합리적인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 없는 모호한 세상에 대한 경외감이랄까. 이혼이란 특별히 딱하다거나 절망적인 일은 아니다. 결혼생활이 인생을 새로 시작 하게 해주는 「멋진 신세계」가 아니듯이 이혼 또한 절대 겪어서는 안 될 「낙원추 방」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혼이 큰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이혼과 함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렵게 마련한 작 은 방 한 칸. 거기에 누인 내 몸은 아이를 잃은 뒤로 더욱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희망을 모르기 때문에 절망도 몰라. 내 삶은 언제나 마찬가 지야. 나쁜 것은 그 다음달로 학교에서 해고를 당했다는 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여교사에 대한 재단의 편견은 그동안 온갖 불 이익으로 나타났다. 늘 해고에 대한 불안을 느껴야만 했으며 귀찮고 자질구레한 잡 무를 떠맡기가 일쑤였다. 심지어 여교사들이 숙직을 하지 않고 당직을 하는 것을 「 편하게 때운다」고 생각하여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숙직실에서 쓸 이불을 빨아오게 했다. 그런데도 교무실에는 언제나 여교사가 훨씬 많았다. 되도록 강사나 임시교사 로 채용하기 때문에 남자교사보다 훨씬 값싸고 관리하기 쉬운 노동력이었던 것이다. <글: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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