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터뷰] ‘화려한 컴백’ FC서울 윤석영 “아픔만큼 성숙해졌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10일 05시 30분


해외에서 활약하다 올여름 국내무대로 복귀한 윤석영은 FC서울에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최근 꾸준하게 출전하며 자신의 기량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는 게 목표다. 스포츠동아DB
해외에서 활약하다 올여름 국내무대로 복귀한 윤석영은 FC서울에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최근 꾸준하게 출전하며 자신의 기량을 조금씩 되찾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는 게 목표다. 스포츠동아DB
윤석영(28·FC서울)은 아주 특별한 2018시즌을 보내고 있다. 6년여 만에 복귀한 K리그1의 매 순간이 소중하기만 하다.

자신을 키운 전남 드래곤즈에서 4년을 보내고 2013년 1월부터 퀸즈파크레인저스(QPR)~돈캐스터 로버스~찰턴 애슬레틱(이상 잉글랜드)~브뢴비IF(덴마크)를 두루 거친 그는 지난해 가시와 레이솔(일본)에서 활약하다 여름이적시장을 통해 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임대 신분의 윤석영은 내년까지 서울에 머물게 됐다.

오랜 만에 밟은 K리그 그라운드. 걱정은 있었지만 낯설진 않았다. 유쾌한 기억을 떠올리며 좋은 플레이를 이어간 국가대표팀 출신 왼쪽 풀백은 이제 완전히 팀에 정착했다. 새 소속 팀은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을 보내고 있으나 적어도 윤석영은 제 역할을 120%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K리그1 7경기 1골·2도움, 라운드 베스트11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 구리에 위치한 GS 챔피언스파크에서 마주한 윤석영은 “그냥 열심히 뛰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희생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플레이 자체는 다소 미흡해도 다른 부분에서 팀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 희생의 가치를 깨닫다!

-FA컵(2경기) 포함 하반기 전 경기에 출전 중이다.

“동료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팬들의 응원도 상상이상이었다. 이렇게 따스하게 반겨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덕에 모든 부분이 수월했다. 적응이 의외로 빨랐다. 솔직히 100% 상태는 아니다. 좋았던 모습을 점점 찾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공격 가담과 전진 횟수가 많았다면 지금은 팀을 위한 희생을 항상 떠올리며 경기를 뛰고 있다.”

-해외생활을 하기 전의 윤석영은 어땠나.

“그때는 너무 어렸다. 항상 배우는 입장이었다.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죽자고 뛰기만 했다. 물론 지금도 배우는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날 바라보는 후배들이 많았다. 어느덧 중견 선수가 돼 있더라.”

-K리그로 복귀할 때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다면.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유럽 진출 당시에 어떻게 나갔었는지, 유럽에서 어떻게 플레이를 했는지, 또 일본은 왜 가게 됐는지를 정확히 안다면 지금의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K리그로 향할 때는 정말 설¤다. 불안함이 전혀 없진 않았어도 기대감이 컸다.”

-K리그에 바뀐 부분이 있나.

“경기 속도와 템포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선수들의 실력도 우수하다. 결코 우리 K리그가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다. 경쟁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오히려 유럽진출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K리그 붐업을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선수들부터 노력해야 한다.”

FC서울 윤석영. 사진제공|FC서울
FC서울 윤석영. 사진제공|FC서울

● 아픔만큼 성장한 윤석영

-유럽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다.

“맞다. 처음 QPR에 입단해보니 주전 경쟁이 대단했다. 그곳에서 난 세 번째 옵션이었다. 챔피언십(2부리그) 강등 경쟁을 하는 팀이 어떻게 날 기용하겠나. 완전히 밑바닥부터 다시 다져야 했다. 정말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많이 배운 시간이다. 축구보다 인생을 더 배웠다.”

당시 윤석영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QPR 이외에 풀럼FC(잉글랜드)도 강력한 러브 콜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풀럼에 마음이 끌렸다. 그런데 상황은 좋지 못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전남은 QPR에 무게를 실었다. 런던 현지에 도착해 주변과 연락도 끊고 고민도 해봤지만 끝내 QPR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영광스러우면서도 괴로운 유럽 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스스로 성장했다고 자부하나.

“그렇다. 정말 몸부림을 치며 살아남으려 노력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님은 아시아 선수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았다. 가자마자 강등을 경험했다. 다행히 차차 환경이 좋아졌다. 중요한 경기에서 호출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한 뒤 주력으로 뛴 한 시즌도 잊을 수 없다.”

-솔직히 이후의 과정도 순탄하지 못했는데.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순풍을 탄 국내와는 달랐다. 광양제철고 출신으로 전남에 와서 처음 가진 목표는 ‘매 시즌 20경기 출전’이었다. 그런데 금세 이뤄졌다. 20세 이하(U-20) 월드컵 출전과 올림픽의 꿈도 이뤄졌다.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 워크퍼밋(취업비자) 문제로 브뢴비로 단기 임대됐는데,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앞만 보며 죽기 살기로 훈련했다.”

FC서울 윤석영. 스포츠동아DB
FC서울 윤석영. 스포츠동아DB

● 또 달라질 내일을 향해

-2018러시아월드컵 출전도 내심 기대했을 것 같다.


“아쉬움은 있다. 그래도 인정한다. 내가 부족해서다. 지난해 10월 유럽 원정으로 열린 A매치 시리즈를 앞두고 대표팀의 호출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기량을 검증받을 기회를 놓쳤다. 같은 포지션의 (김)진수(26·전북 현대)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스웨덴과의 대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박)주호(31·울산 현대) 형이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다. 전체가 똘똘 뭉쳐있더라. 선수는 안다. 대표팀이 얼마나 훈련을 열심히 했고, 준비했는지…. 뭔가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며 뭉클했다.”

-이번 이적을 통해 대표팀 복귀도 꿈꾸는지.

“개인적인 목표가 있어서, 뭔가 이루고 싶어서 이곳에 오지 않았다. 대표팀 복귀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서울로 향한 것은 아니다. 서울 유니폼을 입었기에 서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역할을 고민할 뿐이다.”

-부상도 잦은 편이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튀고 싶었다. 화려하고 싶었고, 최대한 날 어필하려 했다. 쉬운 플레이를 무리하게 한 적도 있다. 부상이 잦은 이유였다. 지금은 몸을 사릴 때는 사릴 줄 안다. 필요한 것만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열심히 했고, 혼신을 다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남기고 싶다. 항상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리고 프로에서 꼭 우승 타이틀을 얻고 싶다. 프로에 진출한 이후 아직 우승 트로피가 없다. 어떤 대회에서든 1위의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